1. 프롤로그: 자본시장과 기업에 무슨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걸까?

 

20171212, 파리에서는 파리협정 채택 2주년을 기념하여 Climate Action 100+(기후행동 100+)’ 이니셔티브가 출범하였다. ‘기후행동 100+’는 전 세계 225개 대형 기관투자자들이 기후변화에 공동으로 대응하기 위하여 발족한 협의체다. 이 투자자들은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100개 기업을 선정하여 (20187, 61개 기업 추가 선정), 이 기업들이 (1)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관리 체계를 갖추고, (2) 파리협정에서 제시한 목표에 맞게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며, (3) 온실가스 배출 및 감축 관련 정보를 상세히 공개하도록 독려하겠다고 밝혔다.

기후행동 100+의 특징을 몇 가지 살펴보면, 먼저 이들 225개 투자자들이 운용하는 자산규모가 약 26조 달러(한화 31,200조 원)2019년 말 기준 한국증시 상장기업 시가총액인 1,723조 원의 18배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다. 출범 이후에도 참여 투자자는 계속 늘어서 현재는 450여개 투자자, 운용자산 40조 달러에 달한다. 한편, 이들의 감시대상이 된 100+61개 기업들은 주로 석유·가스, 전력, 운송, 금속 산업 등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기업들인데, 한국에서는 한국전력, 포스코, SK이노베이션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 161개 기업이 배출하는 온실가스가 전 세계 산업체 배출량의 80%를 차지할 정도로 이들의 비중이 크다. 끝으로 주목할 점은 이 조직이 전적으로 투자자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 같으면 이런 모임은 으레 환경 운동가와 전문가들이 주도하고, 기후변화 대응 필요성, 목표, 그리고 행동계획은 잘 제시하지만 실제로는 실행력이 담보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그에 비해, 기후행동 100+는 영향력이 큰 글로벌 투자자들이,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기업들을 명시적으로 겨냥하여, 실효적인 압력을 가함으로써 이들의 행동을 변화시키려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예컨대 Financial Times(2017. 12. 13)는 기후행동 100+의 발족이 기업들이 탄소배출 비용을 무시할 수 없도록 만듦으로써 실제 탄소배출 감소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이들 투자자들은 기업과의 미팅, 서한, 주총 의결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구체적인 행동을 끌어내고 있다. Economist(2019. 5. 30)기후변화에 관심을 가진 투자자들이 이렇게 잘 조직화된 적도, 이렇게 성과를 거둔 적도 없었다.”고 기후행동 100+의 성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바 있다.

 

운용자산이 약 7조 달러에 이르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BlackRock의 창업자이자 CEOLarry Fink는 매년 초 BlackRock이 주주로 있는 기업의 CEO들에게 공개서한을 보낸다. 2018년 편지에서, Fink는 기업이 단기 재무성과가 아닌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성장을 추구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환경, 사회, 지배구조(ESG; Environmental, Social, and Governance)’ 문제를 잘 해결할 역량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어떤 기업이 환경, 사회, 지배구조이슈를 잘 관리할 수 있다면, 이는 곧 그 기업이 지속가능한 성장에 필요한 리더십과 좋은 지배구조를 가졌음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투자결정 과정에서 이 세 가지 이슈를 점점 더 많이 고려하고 있다.”

          “A company’s ability to manage environmental, social, and governance matters demonstrates the leadership and good governance that is so essential to sustainable growth, which is why we are increasingly integrating these issues into our investment process.”

 

올해 1월에 발표한 편지에서는 Fink의 메시지가 보다 분명하고 강력해졌다. 그는 환경 문제 및 이해관계자들과의 관계에서 지속가능성을 고려하지 않는 기업들은 자본시장의 신뢰를 잃어서 자금조달 비용이 증가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같은 맥락에서, BlackRockESG 이슈를 고려한 투자가 더 높은 수익률을 가져다준다는 믿음으로 투자결정을 하고 있으며, ESG 문제를 소홀히 하는 경영진에 대해서는 주주로서 반대표를 던지겠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한편 기업 경영자들도 이러한 변화에 동참하고 있다. 미국 주요 대기업 CEO들의 모임인 Business Roundtable20198181명의 CEO가 서명한 Statement on the Purpose of a Corporation을 발표하였다. Business Roundtable은 주기적으로 기업 지배구조의 원칙을 발표해왔는데, 과거에는 일관되게 주주 우선주의(shareholder primacy), 즉 기업은 주주 이익을 위해 존재한다는 원칙을 지지해왔다. 그러나 이번에 발표된 선언은 주주뿐 아니라 소비자, 노동자, 납품 기업, 지역 사회 등 모든 이해관계자를 배려하는 것이 기업의 목적이라는 새로운 원칙을 담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CEO들은 다음과 같이 다짐하고 있다.

 

    “We share a fundamental commitment to all of our stakeholders. We commit to:

     - delivering value to our customers,

     - investing in our employees,

     - dealing fairly and ethically with our suppliers,

     - supporting the communities in which we work,

     - generating long-term value for shareholders.“

 

이러한 흐름은 올해 1월에 열린 다보스 포럼에서 재확인되었다. 올해로 50년째를 맞은 다보스 포럼의 주제는 결속력 있고 지속 가능한 세계를 위한 이해관계자였다. 이 자리에서 참가자들은 기업이 주주뿐 아니라 기업 활동을 위해 관계를 맺는 이해관계자들, 그리고 지구 환경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결국에는 주주들을 위한 이윤 창출 역시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처럼 기업이 주주만이 아니라 모든 이해관계자를 위해 존재한다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 시대가 열렸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다.

 

지금까지 이야기를 정리해보자. 투자자들은 기후변화 대응, 사회적 가치 및 좋은 기업 지배구조 추구 등 소위 지속가능성을 강조하면서, 지속가능성을 추구하지 않는 기업에는 투자하지 않겠다고 나서고 있다. 기업들도 이에 맞장구치며 이제 주주만이 아니라 모든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위해 일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그러나 이건 분명 낯선 풍경이다. 기업들은 오로지 이윤만을 추구하는 악의 축처럼 취급받아 왔는데, 갑자기 회개해서 새 삶을 살겠다는 것인가? 그럼 앞으론 이윤이 줄고 주가가 떨어지더라도 사회적으로 필요한 일을 기꺼이 하겠다는 것인가? 늘 그래왔듯이 말만 뻔지르르 하고 정작 행동은 안 바뀌지 않을까? 투자자들은 또 왜 이러지? 그들은 늘상 주주가치 극대화를 추구하라고 CEO들을 다그치지 않았던가? 금융위기 이후 대기업과 자본가에 대한 반감이 더 커지니까,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을 다하겠다고 그럴 듯하게 를 하는 것일까? 아니면 기업과 투자자들이 진짜 바뀐 것일까?

 

이러한 변화가 정말로 지속적이고 대세로 자리 잡을지, 아니면 한 때의 유행처럼 지나갈지는 확신할 수 없다. 그런데 지난 몇 년 사이에 투자자(자본가, 주주)들에게 질적·양적으로 뚜렷한 변화의 조짐이 느껴진다. 이제 그들은 ESG 활동을 열심히 잘하는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이익이라고 믿기 시작했고, 그렇게 믿는 투자자들 숫자도 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과거에는 기업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당위론적 주장이 지배적이었다. 이런 주장이 점점 큰 사회적 압력과 정부 정책으로 나타나자 기업들은 어쩔 수 없이그 흐름을 어느 정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강화된 환경 규제와 이에 따른 비용 지출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ESG 투자자들은 당위론적 주장이 아니라, “ESG 활동으로 대표되는 지속가능 활동이 기업 수익성에 도움이 된다. 최소한 손해가 되지는 않는다.”실증적 관찰에서 출발한다. 이렇게 되면 기업들의 지속가능 활동을 장려하는 투자(sustainable investing), 좀 더 명확히 해서 ESG 투자(ESG investing)는 투자자들의 인센티브에 합치하는(incentive-compatible) 투자이고, 따라서 누구의 강제 없이도 자발적,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나는 이런 흐름이 계속 이어진다면 지속적으로 심화된 자본주의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자본주의의 가능성을 열어줄 것으로 기대하며, 이러한 기대를 바탕으로 ESG 투자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한다. 그러나 지속가능/ESG 투자에 대해서는 여러 각도에서 다양한 견해가 존재하며, 이들 간에는 합의에 도달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간극이 존재한다. 예컨대 지속가능/ESG 투자에 대한 경제학, 경영학, 사회학의 인식과 논의 방향은 매우 다르고, 경제학 내에서도 견해 차이가 있다. 또한 일반인들의 인식은 매우 부족한 상황인데 비해, ESG 투자 전문가들은 투자와 관련한 아주 테크니컬한 분석에 전념하고 있다.

이처럼 아직 ESG의 전체 모습에 대한 사회적 컨센서스가 없는 상황이므로 한 차례의 짧은 글로 이를 모두 담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따라서 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서 ESG 투자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하는데, 이 글은 전체 시리즈의 프롤로그인 셈이다.

 

 

2. ESG 투자란 무엇인가?: 정의, 현황, 특징

 

2.1 ESG 투자 정의

 

그럼 ESG 투자란 무엇인가? 먼저 ESG 분야에서 S&P와 유사한 역할을 하는 , 기업들에게 ESG 등급(rating)을 부여하고 S&P 500 지수처럼 다양한 ESG 지수(index)를 생산하는 - 대표적 기업인 MSCI의 정의를 보자. MSCI에 따르면, “ESG 투자란 투자 의사결정 과정에서 재무적 요소뿐만 아니라 환경, 사회, 지배구조 요소들을 고려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건 동어반복적이어서 하나마나한 소리다. 한술 더 떠서 MSCIESG 투자가 사회적 책임 투자(SRI; socially responsible investing), 지속가능 투자(SI; sustainable investing, 미션 지향 투자((mission-related investing) 등과 유사하다고 언급하여서 혼란을 더하고 있다. 실제로 이 용어들은 명확한 정의 없이 혼용되고 있으며, 그때마다 다른 의미를 갖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BlackRock올해 발간된 자료에서, 투자자, 자산운용사, 정책 당국자, 산업계 전문가, 학자, 언론, 시민단체 사이에서 이 용어들이 서로 다른 의미로 쓰이고 있으며, 이들 용어에 대한 컨센서스가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처럼 관련자들이 같은 단어를 다른 의미로 쓰거나, 서로 다른 단어를 사실은 같은 의미로 쓰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면, 이런 투자 활동의 목표, 정책 방향, 투자 상품, 투자 성과, 미래 전망 등에 대해서 합의를 이루기가 매우 어렵다.

다음 블로그 포스팅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루겠지만, 이 용어들은 서로 다른 시기에 사용되기 시작했고 그렇기에 다른 역사적 맥락 및 지향성을 가지고 있다.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이들을 비교해 본다면, ‘사회적 책임 투자가 이 중에서 가장 먼저 쓰이기 시작했으며, 주로 사회에 도움이 되는 활동, 최소한 사회에 해가 되지 않는 활동에 투자하는 것을 의미한다. 대량살상 무기, 핵무기, 담배, 석탄·석유 제조 기업에는 투자하지 않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입장에서 보면, 재무성과는 주된 관심이 아니며 더 나아가 사회적 가치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재무성과를 희생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한편 지속가능 투자는 우리가 현재와 같은 패턴으로 경제활동을 계속하면 우리 사회·인류·지구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에 기초하고 있다. 따라서 기업들이 기후변화, 환경 및 사회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기업들의 생존도 어렵다는 점을 강조한다. 지속가능 투자는 기업의 재무성과도 중요하게 본다는 점에서 사회적 책임 투자와 다르다. 다만 단기적 재무성과에만 집착하지 말고 장기적 성과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 중요한 메시지다.

‘ESG 투자라는 용어는 2004UN Global Compact가 출간한 리포트인 Who Cares Wins: Connecting Financial Markets to a Changing World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ESG 투자의 문제의식과 지향성은 기본적으로 지속가능 투자와 같다. 이런 이유로 이 두 용어는 종종 동의어로 쓰인다. 그러나 지속가능 투자가 환경·사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당위론적 메시지가 강한데 비해, ESG 투자는, “Who Cares Wins”라는 제목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듯이, 기업들이 환경·사회 문제를 잘 해결하면 그들의 (장기적) 재무성과가 좋아진다는 실증론적 메시지에 기반을 둔다. 따라서 기업이나 투자자들에게 어떤 행동을 호소·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ESG 활동이 당신들에게 이익이라는 자발성을 강조한다. 다음으로, ‘지속가능성논의에서는 투자자보다는 기업 활동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더 많은 초점이 있는데 비해, ESG 투자에서는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 자산운용사 등 투자자들의 역할을 중시하고 있으며, 실제로 이들이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Connecting Financial Markets to a Changing World”라는 부제에서도 투자자와 ESG 이슈를 연결시키려는 의도를 엿볼 수 있다. 그럼 기업이 아닌 투자자가 ESG 활동을 주도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가? 기업에게 지속가능 활동에 대한 사회적 압력이나 규제가 가해지면 어쩔 수 없이 이를 수용하겠지만, 이런 활동은 대부분 이윤 감소를 수반하니 주주들이 좋아할 리 없고,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주주들이 안 좋아할 일을 CEO가 자발적, 적극적으로 하지 않을 건 뻔한 이치다. 그러니 법에 정한 최소한의 것을 하고, 나머지는 대외 이미지 개선에 도움이 되는 정도의 별로 중요하지 않은 활동을 하는데 그친다. 그리고 이런 활동들을 잘 엮어서 연말에 멋진 표지의 CSR 보고서로 출간한다. 그러나 사업부서 직원들은 대부분 그런 활동이 있었는지, 그런 보고서가 나왔는지조차 모르고 지나간다. 하지만 ESG 투자에 긍정적인 입장을 가진 투자자들이 이 흐름을 주도한다면, 기업 CEO들도 이윤 (기업가치) 극대화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ESG 이슈를 피하려는 성향이 없어지거나 최소한 줄어들 것이다. 이것이 인센티브에 기반한 선순환의 출발점이다. 물론 ESG 투자/활동을 열심히 하는 투자자/CEO들도 사회적 책임, 지속가능성, 이해관계자 자본주의가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들이 사회적 책임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이런 활동을 한다고 대놓고 말할 정도는 바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멋진 단어들은 자신들의 ESG 투자를 일반 대중의 언어로 예쁘게 포장해주는 포장지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될 것이다.

 

2.2 ESG/지속가능 투자 분류

 

그러면 구체적으로 ESG 투자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ESG 투자 활동에 대한 분류는 다양하게 있지만, 대체로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세 가지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세 가지 투자 중에서 스크리닝 투자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임팩트 투자는 적정 수익률을 전제로 한 지속가능 투자라고 할 수 있다. 그에 비해 ESG integration 투자는 기업의 ESG 요인들을 감안하여 투자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되, 이를 감안하지 않은 포트폴리오에 비해 수익성이 더 낫거나 나쁘지 않은 것을 목표로 한다. , ESG integration 투자는 ESG 문제 해결과 더 높은 수익률을 동시에 추구하는 투자이다. 이렇게 보면, [1]의 투자 활동을 포괄하여 지속가능 투자, 더 나아가서는 사회적 책임 투자라고 부르는 데 별 무리가 없으며, 실제로 많은 자료들이 이들을 지속가능 투자 또는 ESG 투자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ESG 투자의 정의가 혼란스럽게 된다. [1]에 제시된 광의ESG 투자는 지속가능 투자와 사실상 같은 뜻이지만, 이 중 한 그룹은 또 명시적으로 ‘ESG’ integration이라는 명칭을 쓰고 있어서 도대체 어떤 게 진짜 ESG 투자냐 하는 의문을 갖게 만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이러한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 광의ESG 투자 = 지속가능 투자, ‘협의ESG 투자, ESG integration = ESG 투자로 구별해서 부르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별도의 설명이 없는 한 내 글에서 ESG 투자는 ESG integration을 지칭한다.

 

 [1] ESG 투자 분류(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지속가능 투자의 분류)

 

 

2.3 ESG 투자 현황

 

[2]2018년 현재 전세계 지속가능 투자 자산 현황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따르면 지속가능 투자 자산 총액은 30.7조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2016년 대비 2년 사이에 34% 증가한 액수다. 지역별로는 유럽이 14조 달러로 전체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고 미국이 12조 달러로 그 뒤를 따르고 있다. 미국의 전체 금융자산 규모가 훨씬 크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속가능 투자는 지금까지 유럽이 선도해 왔다. 그러나 최근 성장세는 유럽이 가장 뒤지는데, 유럽의 지난 2년간 증가율은 11%로서 일본(307%), 호주·뉴질랜드(46%), 캐나다(42%), 미국(38%) 지역이 훨씬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그런데 30.7조 달러는 이들 지역 전체 운용자산(managed asset)의 약 26%를 차지하는 것으로, 지속가능 투자 자산의 비중이 작지 않은 편이다. 지역별로 보면, 유럽에서는 전체 운용 자산의 49%가 지속가능 투자 자산으로 분류되고 있는 반면에 미국에서는 아직 26% 정도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은 최근의 빠른 성장에도 불구하고 전체 운용 자산의 18%에 지나지 않아 아직 지속가능 투자가 초기 단계임을 알 수 있다. 한편 30.7조 달러를 투자 성격별로 분류해 보면, 그 중에서 약 20조 달러가 특정 산업 또는 기업을 투자에서 배제하는 스크리닝 투자이다.

종합하면, ESG 문제 해결과 더 높은 수익을 동시에 추구하는 (협의의) ESG 투자는 아직 10여년의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직은 투자 활동의 대세로 자리 잡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최근에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어서 자본시장에서 큰 흐름으로 주목받고 있다고 하겠다.

 

 [2] 전세계 지속가능 투자 자산 현황, 2016-2018

                                                                                                         (단위: 10억 달러)

: 각국 화폐 단위를 각각 2015년말, 2017년말 달러 환율로 환산하였음

 

 

3. ESG 투자 이해하기: 관련자들의 시각 분석

 

앞에서 지속가능 투자, ESG 투자의 정의에 대해 컨센서스가 없다고 지적했지만, ESG 투자의 목표 및 지향성, 실행 방법 등에 대해서도 관련 이해당사자들의 견해가 크게 엇갈린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기에 무관심하거나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가능성과 진정성에 의구심을 갖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를테면, 사회학자들은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기업들은 경제적 가치 추구에 모든 것을 걸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사회적 가치 달성을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가식이거나 효과가 없다고 믿는 편이다. 한편 신고전주의 경제학의 세례를 받은 경제학자들도 주주가치 극대화를 위해 움직이는 기업이 법에서 정한 것 이상의 사회적 가치를 챙겨야 한다면, 이는 주주가치를 훼손하기 때문에 바람직하지도 유지가능하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들은 사회적 가치 추구가 주주가치(기업가치) 극대화에 도움이 된다는 ESG 투자 이론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방향성과 원인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생각이지만, 경제학자와 사회학자 모두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 추구가 양립 가능하지 않는다는 생각에는 동의하는 셈이다. 한편 투자자 그룹에서 BlackRockFink와 같은 ‘ESG 전도사가 없는 것은 아니나, 이들은 어떻게 하면 ESG 요인들을 감안하면서도 더 높은 수익률을 낼까 하고 아주 전문적인 분석에 몰두하고 있다. 이들의 진지한 노력과 고민을 투자자 서클 이외의 사람들이 들을 기회도 별로 없거니와 들어보아도 ESG 투자를 거시적으로 이해하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3.1 사회학적 관점: 사회적 가치와 사회적 경제

 

사회학자, 또는 경제학을 제외한 사회과학자들은 대체로 시장경제가 경제적 가치를 추구하는 데는 효율적인지 모르지만, 이 과정에서 사회적 가치가 소홀히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 강도와 그 대안에 대해서는 그들 사이에 넓은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급진적 사회주의 성향의 학자들은 시장의 발달이 시민의 삶을 위협하기 때문에 시장과 싸워야 하고 시장으로부터 보호할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는 시각을 가지고 있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기업은 본질적으로 반사회적이다. 그리고 시장논리가 우정, 신의, 조건 없는 상호성, 사랑 등 인간 본연의 특성을 완전히 말살하고 사회적 자본을 파괴한다는 입장을 취한다.” (고동현 외, 사회적 경제와 사회적 가치, 2016) 이들에게 시장경제 체제는 애초부터 조금 수선해서 쓸 수 있는 그런 대안이 못된다. 따라서 이들은 이기적 개인과 사적 욕망의 추구가 아니라, 타인과의 신뢰와 협력, 호혜적 관계를 중시하는 이타적 행동에 기초한 사회적 경제’”가 시장경제를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장경제의 대안으로 이처럼 아름다운 유토피아를 건설하자는 주장이 학문적으로 얼마나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지는 이 분야의 문외한인 나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인류 역사나 이론들을 생각해보면 이런 세상이 현실적으로 구현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보다 온건한견해를 가진 학자들도 역시 사회적 경제를 중요한 대안으로 상정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이들은 사회적 경제를 국가 및 시장의 보완적 영역으로 인식한다. , 사회적 경제도 하나의 경제 영역이지만 국가와 시장 부문의 한계를 보완하는 제3섹터로 보는 입장이다. 이들은 경제적 행위를 행함에 있어 민주성, 공동체 지향성,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포용성, 시민적 자치 역량 강화 등을 추구한다. 이러한 범주의 사회적 경제 조직은 실제로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협동조합, 공제조합, 사회적 기업(social enterprise) 등이 이에 해당한다. 협동조합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사회적 기업은 지난 20여년 사이에 주목을 받고 있다. 국가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사회적 기업은 취약계층 지원 및 일자리 제공, 지역사회 삶의 질 향상 등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면서도 영리활동을 하는 기업이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정부 지원에 힘입어 많은 사회적 기업들이 나타나서 2019년 말 기준, 2,372개의 사회적 기업이 존재하고 약 47천명이 여기에서 일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사회적 기업은 예외가 없지는 않겠지만, 시장에서 경쟁을 하는 기업들에 비해 인력, 제품, 비즈니스 모델, 자금력 등 모든 면에서 경쟁력이 뒤지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이들이 영리를 추구한다 하더라도 시장 수익률을 실현하고 있는지 의문이고, 심지어는 정부 및 대기업의 지원이 없으면 생존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처럼 자본주의를 보완하는 사회적 경제, 그리고 실현 도구로서의 사회적 기업은, 그 정의와 지향점처럼 자본주의의 한계 및 문제점을 보완하는 역할을 하겠지만, 그 역할은 매우 제한적이며 시장경제의 방향 자체를 바꾸거나 시장경제의 문제점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동력을 제공하지는 못할 것으로 본다.

지금까지 논의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현재의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대체하는 대안으로서 사회적 경제는 지나치게 유토피아적이어서 현실성이 없고, 3섹터로서의 사회적 경제는 시장경제를 제한적으로 보완하는 정도의 영향 밖에 없다. 유토피아를 만들고 싶다고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한 걸음 한 걸음 사회적 기업을 육성한다고 해서 시장경제 전체가 그렇게 바뀔 수 있는 것은 아니다.

 

3.2 자본주의 경제학에서 본 ESG 투자

 

자본주의 경제학은 합리성의 가정에서 출발한다. 여기서 합리성이란 경제 주체들이 이기심을 바탕으로 자신의 후생·가치를 극대화하는 행동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아담 스미스는 그의 국부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내가 오늘 저녁을 먹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푸줏간, 양조장, 빵집 주인의 자비심 덕분이 아니라 그들의 이기심 덕분이다.” , 재화들이 필요한 만큼 시장에서 생산, 교환, 소비되는 것은 거기에 참여하는 경제주체들이 각자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 결과이지, 그들의 이타심이나 정부의 중앙집중적인 통제 덕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모든 시장이 완전경쟁이라고 가정할 때, 경제활동에 참여한 모든 주체들의 개별적 가치가 극대화될 뿐 아니라, 경제 전체적으로도 경제적 가치가 극대화된다고 믿는다. 이를테면 기업이 경제적 가치(이윤)를 열심히 추구하다보면, 소비자, 노동자, 납품 기업의 후생 같은 사회적 가치 창출에 저절로 기여하게 된다는 것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이 1970년에 뉴욕 타임스 매거진에 기고한 The Social Responsibility of Business is to Increase its Profits라는 글은 이러한 신고전주의 경제학의 견해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프리드먼의 글은 워낙 많은 영향을 미쳤기에 후에 별도 블로그에서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물론 완전경쟁의 가정은 어디까지나 교과서적이고 실제 시장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시장 실패가 나타난다. 그 중 대표적인 예가 외부효과이다. 기업이 재화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데, 기업이 시장에서 이에 대한 대가를 지불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이러면 기업의 경제적 가치는 극대화되겠지만 환경이라는 사회적 가치는 훼손된다. 경제학에서는 이 같은 부정적 외부효과가 발생하는 경우에는 부담금(penalty)을 부과함으로써 자신의 생산 과정에 사회적 가치를 내부화할 수 있다고 처방한다. 이런 식으로 경제학 이론 틀 내에서도 경제적 가치와 함께 사회적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연결고리가 생긴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가치 추구는 이윤 극대화와 아무런 충돌이 없으므로, 여전히 이윤극대화가 가장 확실한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길이라는 주장이 성립한다.

이처럼 신고전파 경제학에서는 지속가능 투자의 정당성, 논리에 대하여 불편하게 생각한다. “사회적 가치 추구는 규제에서 정한 수준으로 하면 되는 것이지, 그 이상으로 하는 것은 비용 증가로 연결되어서 이윤 감소를 가져올 것이며, 이는 곧 기업가치 하락을 초래하는 것 아닌가? 어떤 기업이 , 그 기업의 CEO나 대주주가 자발적으로 사회적 가치를 적극 추구하는 것이야 장려할 일일지 모르지만, (사실 이 기업의 모든 주주들이 이익 감소를 초래할 이런 행동을 지지하느냐는 것은 별도의 문제로, 지배구조와 연결된 문제이지만 여기서는 이 부분에 대해 논의하지 않기로 한다.) 모든 기업들이 그렇게 행동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합리성의 가정에 위배되는 것이다. 따라서 법·제도로 정한 수준 이상의 사회적 가치를 기업에게 기대하는 것은 인센티브에 합치하는 제도가 아니므로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경제학자들은 ESG 활동과 투자 수익률을 동시에 추구하는 (협의의) ESG 투자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도 대체로 회의적이다. 물론 이 둘이 동시에 달성된다면 그건 분명히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ESG 투자자들이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면서 ESG 활동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의 인센티브에 어긋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만약 ESG 활동으로 단기적 이윤이 줄어들더라도 시장에서 장기적 수익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판단하여 주가가 올라준다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전통적인 재무이론에 따르면, ESG 문제가 많은 기업을 포트폴리오에서 배제하거나 ESG 우수 기업에 투자를 늘리는 활동은 수익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지금까지 ESG 투자가 수익률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 학문적인 컨센서스가 이루어졌다고 보기는 이르다.

짧은 글로 담기에는 너무나 복잡한 경제학 이론들을 열거하였지만, 간단히 종합하면 일반적인 경제학자들은 지속가능 투자가 합리성의 가정, 즉 인센티브에 합치하지 않는 제도이기 때문에 계속 유지되기 어렵다고 보고, ESG 투자도 구체적인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ESG 투자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해 온 경제학자들에 따르면 ESG 투자가 장기 수익률을 중시하는 투자자들의 인센티브에 합치할 뿐 아니라, 투자 성과에 대해서도 비교적 긍정적인 실증분석 결과가 나오고 있다. 이를 감안하면, ESG 투자에 대한 일반적인 경제학자들의 시각은 이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3.3 투자자의 시각

 

투자자들은 학자들의 뿌연 관념적 토론에 별 관심이 없다. 기관투자자들이나 자산운용사들은 자산을 위탁한 고객들에게 높은 투자 수익을 돌려주어야 하는 수탁자의 의무(fiduciary duty)가 있기 때문에 그들의 거의 모든 관심은 투자 수익률에 있다. 그들은 환경오염이나 기후변화, 그리고 지배구조 문제들이 투자 포트폴리오의 수익률에 이미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향후 장기적 수익성에는 더 큰 영향이 있으리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1) 투자 수익률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ESG 이슈들이 무엇인지, (2) 개별 기업들의 ESG 관리 역량을 어떻게 측정할 것인지, (3) ESG 이슈들을 어떻게 투자분석에 통합할 것인지에 대해서 끊임없이 분석하고 있다. 투자자들에게 ESG 관련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MSCI, Morningstar, ISS )은 중요한 ESG 이슈들을 발굴하고, 기업들의 ESG 등급을 매기며, 다양한 투자 포트폴리오 인덱스를 만들기도 한다. 자산운용사들은 내·외부의 정보들을 활용하여 투자 결정을 하는데, ESG 이슈를 통합하기 이전에도 이들의 투자 모형은 매우 정교했는데 ESG 요인들이 추가되면서 훨씬 복잡하고 어려워졌다.

ESG 투자가 좋은 실적을 낼 수 있다는 것과 실제로 좋은 실적을 내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많은 연구들에 따르면, ESG 요인들을 어설프게 반영하면 ESG를 전혀 감안하지 않고 투자했을 때보다 수익률이 더 나빠진다. (하긴 이건 ESG 투자 뿐 아니라 모든 투자에 적용되는 말이긴 하다.) 그렇다고 우리는 ESG 투자 같은 건 안 합니다.”라고 말하면 트렌드나 시대정신에 뒤떨어져 보이고, ‘정치적 올바름측면에서도 문제가 있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막상 ESG 요인을 통합해 좋은 성과를 낼 자신은 없으니, “환경 펀드, 기후변화 대응 펀드등 그럴듯한 상품을 내놓지만 실제 내용을 보면 그린 워싱(green washing)’에 불과한 경우도 많다.

투자자들이 보는 향후 과제들은 (1) 어떻게 하면 좋은 ESG 자료를 제공하도록 기업과 규제 당국을 설득할 것인가, (2) ESG 정보를 어떻게 정량화할 것인가, (3) ESG 요인을 어떻게 투자 모형에 통합할 것인가, (4) ESG 투자 성과는 장기적으로 나타나는데 이를 어떻게 투자 성과 평가 주기와 일치시킬 것인가 등이 되겠다.

 

3.4 경영학에서 본 ESG 활동

 

경영학자들은 투자자들보다는 기업들의 지속가능/ESG 활동에 관심을 갖고 있다. (경제학에서는 기업이 이윤 극대화, 즉 주주가치 극대화를 추구하는 조직으로 자리매김 되어 있고, 기업 경영자는 이 목적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대리인으로 보기 때문에 세부적인 기업 활동에는 관심이 적다. 적어도 우리의 논의에서는...) 경영학자들이 보는 현 상황은 대충 이렇다. “기업들이 사회적 가치 창출에 기여하도록 압박을 받는 세상이 왔는데, 기업들은 이윤이 줄어들 것을 걱정하면서도 그렇다고 사회적 가치를 완전히 외면할 수도 없기에 어찌할지 모르고 우왕좌왕하고 있다. 그렇다면 사회적 가치를 능동적으로 수용하면서도 이윤을 늘릴 수 있는 전략이 있지 않을까? 원래 전략이란 게 경영 환경이 바뀌었을 때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새로운 경영활동을 찾아내 이윤을 늘리는 걸 목표로 하는 것이니까.”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경영학에서는 전략적사회공헌, ‘전략적’ CSR 활동에 대한 많은 연구가 있어왔다. 이 중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이 Porter & Kramer2011HBR에 발표한 Creating Shared Value이다. 그들은 기업들이 이윤 극대화에 매몰되어 사회적 문제 해결에 대해 소극적인데, 이해관계자들과 함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내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함은 물론 이윤도 증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공유가치를 창출하는 구체적 방법으로, (1) 시장과 상품, (2) 가치사슬, (3) 생태계의 세 측면에서 다른 기업들과 차별화되고 통합적인 가치창출 전략을 수립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그런데 이 방법들은 Porter(2008)What is strategy?에서 제시한 경영전략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Porter는 이 논문에서 전략이란 다른 기업과 차별화된 통합적인 행동들의 집합(a unique, integrated set of activities)으로 정의한 바 있다. 따라서 Porter & Kramer의 당초 의도가 무엇이었건 간에, 이 글은 기업 경영자들에게 사회적 이슈를 필요악이라는 부정적인 시각에서 바라보지 말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서 이윤을 늘릴 수 있는 기회라는 인식으로 전환해라 (위험에서 기회를 보라!)”는 전략 페이퍼로 보인다.

물론 이러한 인식 전환은 분명히 의미가 크며, ESG 활동을 잘해서 이윤도 올리고 사회적 가치도 올린다면 그것은 크게 장려할 일이다. 그러나 Porter가 제시한 방법론은 기껏해야 일부 산업, 일부 기업, 일부 기업 활동에서만 적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전방위적인 CSV와 거리가 멀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내가 ESG 활동을 잘해서 이윤을 올릴 수 있는 경우는 다른 기업들이 이를 모방할 수 없을 때에 국한된다. 원래 경영전략이란 것은 남들과 다르게 행동해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함으로써 이윤을 늘리는 방법을 찾는 학문이다. 만약 모든 기업들이 똑같은 행동을 할 수 있게 된다면 나만의 차별화 포인트가 없어지고 따라서 이윤은 완전경쟁 수준으로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기업들이 이윤도 올리고 사회적 가치 창출에도 기여하는 그런 좋은 시나리오는 없다.

이렇게 되면 문제는 다시 신고전주의 경제학자들의 고민으로 돌아간다. ESG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치면 이윤이 줄어들 텐데, 이런 상황에서도 기업 CEO들은 CSV를 추구할 인센티브가 있는가? 궁극적으로는 기업 활동이 변화해야 ESG 활동이 가능하긴 하지만, 기업들을 그런 방향으로 움직일 힘은 투자자로부터 나온다는 점을 경영학에서는 간과하고 있다.

 

3.5 일반인들의 시각

 

일반인들은 대부분 이 문제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잘 모른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지속가능 활동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 아직도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 정도로 생각하며, 특히 ESG 투자에 대해서는 거의 들어볼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물론 기후변화나 환경오염 문제는 워낙 피부에 와 닿는 문제이고, 정부와 기업이 여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를 제대로 실행에 옮기려면 자본시장으로부터 변화가 시작되어야 한다는 인식에는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최근 투자자들의 행동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거나 기껏해야 일부 소수의 활동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에 대한 반응은 , 기특하군. 그렇지만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겠어?” 정도가 되겠다.

 

 

4. 에필로그: ESG 투자가 자본주의의 미래를 열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나 지속가능 성장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모든 이들이 공감할 것이다. 그러나 방향성이나 강도, 그리고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매우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고 또 상당히 회의적임을 확인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ESG 투자를 주도하고 있는 투자자들은 이 방향이 옳은 길이라고 믿고 그 길로 가기 시작했다. 아직 그 흐름이 대세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그리고 유력한 기관투자자들과 자산운용사들은 대부분 이 흐름에 참여하고 있다. 투자자들이 지난 10여년 사이에 이렇게 바뀌게 된 데는 분명 이유가 있겠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 블로그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지만, 아무래도 우리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와 닿는 것은 기후변화 리스크이다. 투자자들이 겉으로는 지구와 인류를 걱정하는 메시지를 내고 있지만, 지구 멸망 이전에 자신들의 자산 가치가 폭락하리라는 위기의식을 갖게 된 것이다.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나는 자본주의 4.0,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처럼 벙벙하고 선언적인, 그리고 정치적인 구호보다는 ESG 투자라는 용어가 담백해서 좋다. 무엇보다도 착한 사람이 아니라 자기 이익에 충실한 사람의 행동을 신뢰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겠다는 투자자들의 행동에서 자본주의 체제를 진화시킬 가능성을 보는 이유다.

Posted by 조 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