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롤로그

 

ESG 투자에 대한 첫 번째 블로그에서는 ESG 투자를 개관하고 왜 ESG 투자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는지 살펴보았다. 이 블로그는 ESG 투자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다루는 첫 번째 글로서, ESG 투자의 What, Why, How에 대해서 자세히 논의한다. 첫째, What 관점에서는 ESG 투자의 정의 및 분류, 현황을 살펴보는데, 이 부분은 블로그(1)에서 간단히 다루었기에 이를 근간으로 살을 붙이도록 하겠다. 둘째, Why 측면에서 ESG 투자가 왜 지난 몇 년 사이에 주목받고 활성화되기 시작했는지를 다양한 관점에서 살펴본다. 셋째, How 측면에서는 투자자들이 ESG 정보를 활용하여 어떻게 투자하는지 논의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별 기업들의 ESG 활동을 평가하여 등급(rating)을 매기고 이를 활용하여 S&P 500 지수와 같은 각종 ESG 지수(index)를 만드는지, 투자 결정에서는 어떻게 ESG 요인들을 반영하는지, ESG 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투자자들이 개별 기업에 어떤 방식으로 관여하는지 등을 살펴본다. 끝으로 ESG 투자를 활성화하는데 있어서 장애요인, 과제 및 향후 전망을 논의하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그리고 다음 블로그부터는 블로그 (1), (2)에서 다룬 내용을 바탕으로 중요한 토픽들을 하나씩 심도 있게 다룰 예정이다.

 

 

2. ESG 투자 정의

 

2.1 혼란스러운 정의가 ESG 투자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기업들에게 ESG 등급을 부여하고 다양한 ESG 지수를 생산하는 등 ESG 투자자들에게 다양한 투자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표적 기업인 MSCIESG 투자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ESG 투자란 투자 의사결정 과정에서 재무적 요인뿐만 아니라 환경, 사회, 지배구조 요인들을 고려하는 것이다. 그러나, 물론 한 문장으로 짧게 정의하다보니 많은 것을 담을 수는 없었겠지만, 이건 동어반복에 불과하다. 한술 더 떠서 MSCIESG 투자가 사회적 책임 투자(SRI; socially responsible investing), 지속가능 투자(SI; sustainable investing, 미션 지향 투자((mission-related investing) 등과 유사하다고 언급하여서 혼란을 더하고 있다.

실제로 이 용어들은 명확한 정의 없이 혼용되고 있으며, 그때마다 다른 의미를 갖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이 법적 용어도 아니고 권위 있는 한 조직이 표준적인 용어를 만들어 제시하고 있는 상황도 아니다. 물론 관련 국제기구와 조직들이 여럿 있으나, 그들도 자신의 출범 배경이나 지향성에 따라서 서로 다른 정의를 고집하고 있다. 예컨대 어떤 조직이 출범 시기에는 SRI가 그 용어에 합당한 개념을 담고 있었으나, 그 이후에 SI, ESG 투자 등으로 개념이 진화하였음에도 SRI를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ESG 투자 초기 단계에서 이러한 용어상의 혼란이 있다면야 이해할 수 있지만, 문제는 ESG 투자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한지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BlackRock(2020), Citi(2018), UBS(2018) 등이 최근에 발간한 자료에서도 투자자, 자산운용사, 정책 당국자, 산업계 전문가, 학자, 언론, 시민단체 사이에서 여전히 이 용어들이 서로 다른 의미로 쓰이고 있으며, 이들 용어에 대한 컨센서스가 없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처럼 관련자들이 같은 단어를 다른 의미로 쓰거나, 서로 다른 단어를 사실은 같은 의미로 쓰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면, 투자자들이 ESG 투자를 정확히 이해하고 관련 자산에 적극 투자하기 어렵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72%의 투자자들이 용어에 혼란을 느끼고 있으며, 절반 이상의 투자자들이 지속가능 투자, ESG 투자, 임팩트 투자의 의미나 차이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당연히 이러한 혼란은 투자를 방해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투자 성과 평가, 정책 방향, 과제 및 전망 등에 대해서도 합의를 이루기가 어렵다. 예컨대 어떤 학자들은 투자 수익률을 중시하는 ESG 투자를 사회적 책임 투자와 유사한 개념으로 오해해서, 일부 자선적인 투자자들이 수익성을 희생하면서도 사회적 가치를 달성하려는 기특한 활동 정도로 치부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같은 맥락에서 무기, 담배, 주류 등 특정 기업에는 투자하지 않는 스크리닝(screening)’ 투자를 ESG 투자와 동일시하여, 이러한 스크리닝 투자는 재무이론 관점에서 정당화하기 어렵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2.2 SRI, SI, ESG 투자, 이 세 가지는 확실히 구별해서 쓰자

 

사회적 책임 투자(SRI), 지속가능 투자(SI), ESG 투자는 서로 다른 시기에 사용되기 시작했고 그렇기에 다른 역사적 맥락 및 지향성을 가지고 있다. [그림 1]에서 3대 자산운용사 중 하나인 State Street은 이 세 가지 투자를 시기적으로 구분하고 중요한 특징을 언급하고 있다. (이 그림에서는 사회적 책임 투자와 책임 투자(RI)를 나누고 있으나, 이 둘을 별도로 구분한 사례가 많지 않고 구분의 실익도 없어서 SRI로 묶기로 한다. 그러나 UN PRI(Principles for Responsible Investment)에서는 SRI가 아닌 RI라는 용어를 쓰고 있으며, 그들은 RIESG 투자와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이다. 어떤 자료에서는 RISRI뿐 아니라 임팩트 투자, ESG 투자를 모두 포함하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이렇게 의미와 계위를 완전히 바꾸어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으니 얼마나 혼란스러운가.)

 

                       [그림 1] 사회적 책임 투자, 지속가능 투자, ESG 투자의 진화

SRI는 종교적·도덕적 가치관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 “남에게 해를 끼치지 말라(Do no harm)”는 미션을 바탕으로 도덕적 가치체계와 어긋나는 산업이나 제품에 투자하지 않는 것이 핵심적인 내용이다. 이처럼 투자에서 제외할 기업을 뺀(exclusionary screening) 최초의 펀드는 1928년에 만들어졌다. 투자에서 제외할 대상은 시대에 따라 달라졌는데, 처음에는 담배, 주류, 도박 등 종교적 기준에서 문제될만한 기업에서 시작하였고, 1960년대 이후 베트남 전쟁, 남아공 흑인 차별, 환경 등 사회적 이슈가 대두되면서 대량 살상 무기 및 핵무기 제조, 탄소 과다 배출, 인종 및 성별 차별 기업 등으로 확대되었다. SRI에서의 투자 결정은 원칙의 문제이고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량적 분석에 기초한 정당화를 필요로 하지는 않았다. 사회적 책임을 염두에 두고 특정 기업들을 배제하는 투자 방법은 여전히 오늘날 지속가능 투자의 하나로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입장에서 보면, 재무성과는 주된 관심이 아니며 더 나아가 사회적 가치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재무성과를 희생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한편 지속가능 투자(SI)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개념이다. 지속가능성이란 단어는 기본적으로 생태계적 접근을 전제로 하고 있다. 예컨대 어떤 기업이 제품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소비자, 노동자, 납품 기업, 지역 사회 등과의 협력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기업이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고 결국 그 생태계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그리고 생태계를 사회, 나아가 인류로 확대하면, 우리가 현재와 같은 패턴으로 경제활동을 계속하면 우리 사회·인류·지구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다. 특히 1970-1980년대 기후변화 문제에 대한 우려 확산이 SI의 중요한 추동요인이 되었다. 따라서 SI는 기업들이 기후변화, 환경 및 사회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기업들의 생존도 어렵다는 점을 강조한다. 여기서 SRISI의 중요한 차이점이 드러난다. SRI나쁜기업들에게 투자하지 않음으로써 그들을 벌주는 데 초점이 있다. 이런 세팅 하에서는 기업들은 찍히지 않으려고, 어쩔 수 없이나쁜 일을 피하거나 줄이는 데 급급하다. 그러나 SI는 기업을 위해서도 지속가능성이 중요하다고 설득하려 한다. 따라서 SI는 기업의 재무성과도 중요하게 본다. 다만 단기적 재무성과에만 집착하지 말고 장기적 성과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 중요한 메시지다.

 

2.3 ESG 투자의 특징: 수익률·ESG 동시 추구, 투자자 주도, 인센티브 합치성

 

‘ESG 투자라는 용어는 2004UN Global Compact가 출간한 리포트인 Who Cares Wins: Connecting Financial Markets to a Changing World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ESG 투자의 문제의식과 지향성은 기본적으로 지속가능 투자와 같다. 이런 이유로 이 두 용어는 종종 동의어로 쓰인다.

그러나 사회적 책임 투자나 지속가능 투자가 환경·사회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여해야 한다는 당위론적(normative) 메시지가 강한데 비해, ESG 투자는, “Who Cares Wins”라는 제목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듯이, 기업들이 환경·사회 문제를 잘 해결하면 그들의 (장기적) 재무성과가 좋아진다는 실증론적(positive) 메시지에 더 무게를 둔다. 따라서 기업이나 투자자들에게 어떤 행동을 강요·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ESG 활동이 당신들에게 이익이라는 자발성을 강조한다. 이 리포트의 한 부분을 보자.

 

“(우리는) 환경, 사회, 지배구조 요인을 보다 더 잘 고려하는 것이 사회의 지속가능 성장에 기여할 뿐 아니라, 보다 강하고 회복력이 뛰어난 투자 시장을 만드는 데도 기여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We) are convinced that a better consideration of environmental, social and governance factors will ultimately contribute to stronger and more resilient investment markets, as well as contribute to the sustainable development of societies.”

 

다음으로, ESG 투자에서는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 자산운용사 등 투자자들이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Connecting Financial Markets to a Changing World”라는 부제에서도 투자자와 ESG 이슈를 연결시키려는 의도를 엿볼 수 있다. [그림 2]ESG 투자에서 자산 보유자(asset owner), 자산 운용자(asset manager), 기업들의 관계 및 역할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ESG 문제 해결은 궁극적으로 기업의 경제활동을 통해서 이루어지지만, 투자자가 기업의 ESG 문제 개선 활동을 장려하기 때문에 이러한 활동이 순조롭게 이루어질 수 있다. 투자자가 아닌 사회적 압력이나 규제 때문에 지속가능 활동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기업이 어쩔 수 없이 이를 수용하겠지만, 이런 활동은 대부분 이윤 감소를 수반하니 주주들이 좋아할 리 없고,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주주들이 안 좋아할 일을 CEO가 자발적, 적극적으로 하지 않을 건 뻔한 이치다. 그러니 법에 정한 최소한의 것을 하고, 나머지는 대외 이미지 개선에 도움이 되는 정도의 별로 중요하지 않은 활동을 하는데 그친다. 그리고 이런 활동들을 잘 엮어서 연말에 멋진 표지의 CSR 보고서로 출간한다. 그러나 사업부서 직원들은 대부분 그런 활동이 있었는지, 그런 보고서가 나왔는지조차 모르고 지나간다. 하지만 ESG 투자에 긍정적인 입장을 가진 투자자들이 이 흐름을 주도한다면, 기업 CEO들도 이윤 (기업가치) 극대화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ESG 이슈를 피하려는 성향이 없어지거나 최소한 줄어들 것이다.

 

                                        [그림 2] ESG 투자에서 참가자별 관계 및 역할

  

 

한편 자산 운용자들은 ESG 개선과 높은 수익률을 동시에 달성하는 것이 바람직할 뿐 아니라 가능하다는 믿음 하에 그러한 방향으로 투자하고 또 기업들을 유도한다. 이들이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하게 된 데는 많은 요인이 영향을 미쳤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뒤에서(5) 다시 설명하도록 한다. 그런데 그러한 요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자산 보유자들의 변화다. 특히 연기금과 같은 기관 투자자들은 지속가능성을 추구하지 않으면 자신들의 장기적 수익성이 위험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ESG 활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또한 개인 자산 보유자들도, 특히 밀레니얼 세대를 중심으로, ESG 활동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자신의 자산이 ESG 활동을 잘 해내는 기업에 투자되기를 희망한다. 자산 보유자들의 이러한 변화는 당연히 자산 운용자의 ESG 투자를 촉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처럼 ESG 투자 참여자들은 자산 보유자, 자산 운용자, 기업 모두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에게 이롭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한다. 혹자는 기후변화, 사회적 인식의 변화 등 외부 요인 변화가 심각하게 다가오니까 이들이 어쩔 수 없이, 마지못해그렇게 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이런 외부 요인들이 자산 보유자와 운용자의 태도 변화를 촉발하였다는 건 분명 맞는 말이다. 그러나 어느 시기건 외부 요인 변화는 항상 있어 왔고, 급격한 변화를 빨리 받아들이고 신속하게 대응하는 조직이나 사람은 살아남고, 끝까지 이에 저항하는 이들은 멸망의 길을 걸었다. 새로운 환경에 걸맞게 자신의 목표 또는 선호 함수(objective/preference function)를 바꾸고 그에 걸맞은 행동방식을 찾아서 실행에 옮기는 조직이라면, 이들은 마지못해 행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센티브에 합치(incentive-compatible)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이것이 인센티브에 기반한 선순환의 출발점이다. , ESG 투자는 투자자들의 인센티브에 합치하는 투자이고, 따라서 누구의 강제 없이도 자발적,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물론 ESG 투자/활동을 열심히 하는 투자자/CEO들도 사회적 책임, 지속가능성, 이해관계자 자본주의가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들이 ESG 투자/활동을 하는 이유가 사회적 책임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고 대놓고 말할 정도는 바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멋진 단어들은 자신들의 ESG 투자를 일반 대중의 언어로 예쁘게 포장해주는 포장지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될 것이다.

 

 

3. 지속가능/ESG 투자 분류

 

그러면 구체적으로 ESG 투자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ESG 투자 활동에 대한 분류 또한 다양하지만,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세 가지 그룹으로 나누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다. 그러나 Global Sustainable Investment Alliance(GSIA)는 지속가능 투자를 다음과 같이 7개로 분류하고 있으며, 이와 유사한 분류 체계를 따르는 자료도 적지 않다.

 

  1. Negative/exclusionary screening

  2. Positive/best-in-class screening

  3. Norms-based screening

  4. ESG integration

  5. Sustainability themed investing

  6. Impact/community investing

  7. Corporate engagement and shareholder action

 

그러나 여기에서 7번은 투자자들이 기업의 ESG 활동을 독려하기 위한 전략·활동이지 투자 형태는 아니다. 그리고 2, 3, 5번은 각각 별도의 특징을 지닌 투자 형태이긴 하지만, 대체로 ESG integration 방식 투자에서 이러한 특성을 반영한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굳이 별도로 분류할 필요성이 크지 않다.

 

                      [1] 지속가능 투자 (‘광의ESG 투자) 분류

                      자료: UBS(2018), Partnerships for Goals 부분 참조

 

 

세 가지 투자 중에서 스크리닝 투자는 앞에서 보았듯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초점을 맞춘 투자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지금도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재무이론에 따르면 잘 분산된 투자 포트폴리오일수록 위험을 감안한 수익률(risk-adjusted returns)이 높다. 그런데 스크리닝 투자 방식은 처음부터 특정 기업들을 배제함으로써 투자대상 자체가 줄어들기 때문에, 위험분산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높은 수익률을 올릴 기회도 사전적으로 줄어든다. 따라서 이 투자 방식이 처음부터 낮은 수익률을 전제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수익률이 낮을 개연성이 크다. (하지만 실제 스크리닝 투자 수익률이 시장 평균 수익률 대비 어느 정도 수준이었는지에 대한 실증분석은 상반된 결과들을 보여서 확실한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 수익률에 대한 실증분석 결과는 별도 블로그에서 자세히 살펴 볼 예정이다.) 한편 스크리닝 투자는 당초에 의도한 비재무적 ESG 성과도 제한적이다. 물론 투자자들이야 자신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업을 하는 기업에 투자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가치관을 지켰지만, 실제로 그 가치관이 사회적 성과로 나타나지는 않았다. 즉 스크리닝 투자로 말미암아 이들 기업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거나 자본 비용이 증가하였다거나, 관련 매출이 줄어드는데 기여했다고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ESG integration 투자는 기업의 ESG 요인들을 감안하여 투자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되, 이를 감안하지 않은 포트폴리오에 비해 수익성이 더 좋거나 나쁘지 않은 것을 목표로 한다. , ESG integration 투자는 ESG 문제 해결과 더 높은 수익률을 동시에 추구하며, 주로 상장 기업들의 주식, 채권에 투자를 하고 있다. 그들은 기업의 ESG 등급 등을 감안한 투자 포트폴리오를 구성하여 인덱스 펀드로 판매하는 패시브(passive) 투자 방식을 사용하기도 하고, ESG 위험과 기회를 적절하게 반영하여 관련 자산들을 매입·매각함으로써 시장 수익률을 상회하는 수익률을 목표로 하는 액티브(active) 투자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특정 기업의 ESG 등급이 하락하여 대부분 투자자들이 동시에 그 회사 주식을 매각하거나 또는 채권 인수를 꺼리는 일이 발생한다면 이 기업의 자본비용이 올라가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ESG 투자 자체만으로는 개별 기업의 ESG 활동을 크게 촉진시키는데 한계가 있다.

임팩트 투자는 투자수익과 함께 사회·환경 문제에 긍정적 임팩트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투자를 일컫는다. 따라서 임팩트 투자자들은 특정한 사회 및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여하는 기업(e.g., 친환경 소재 기술 개발 스타트업)에 투자하거나, 채권(e.g., 그린 본드), 특정 프로젝트(e.g., 개도국 재생 에너지 인프라 구축 프로젝트) 등에 투자한다. 임팩트 투자는 주로 사모펀드(PE, Private Equity Fund)와 벤처 캐피털(VC, Venture Capital)이 주도하고 있으며, 이들의 투자 대상은 스타트업을 포함한 특정 기업의 주식·채권으로, 상장 기업 주식으로 구성한 포트폴리오 투자 방식은 일반적이지 않다. 임팩트 투자도 당연히 적정수익률을 목표로 하지만, ESG integration 방식보다 장기적인 투자이고 시장에서 수익률이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수익률 압박이 덜한 편이다. 한편 ESG 성과 측면에서 보면, 임팩트 투자는 특정한 사회·환경 문제를 해결하려는 기업 또는 프로젝트에 투자하기 때문에 다른 두 가지 투자 방식에 비해 그 성과가 뚜렷하게 나타날 수 있다.

지금까지 세 가지 투자 방식에 대한 논의를 바탕으로 판단해 보면, [1]의 투자 활동을 포괄하여 지속가능 투자라고 부르는 것이 더 맞다고 보이며, 실제로 많은 자료들이 이들을 지속가능 투자 또는 ESG 투자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ESG 투자의 정의가 혼란스럽게 된다. 세 가지를 포괄하는 광의ESG 투자는 지속가능 투자와 사실상 같은 뜻이지만, 이 중 한 그룹은 또 명시적으로 ‘ESG’ integration이라는 명칭을 쓰고 있어서 도대체 어떤 게 진짜 ESG 투자냐 하는 의문을 갖게 만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이러한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 광의ESG 투자 = 지속가능 투자, ‘협의ESG 투자, ESG integration = ESG 투자로 구별해서 부르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별도 설명이 없는 한 내 글에서 ESG 투자는 ESG integration을 지칭한다.

 

 

4. ESG/지속가능 투자 현황

 

GSIA2년마다 Global Sustainable Investment Review를 발표하고 있는데, 이 보고서는 지속가능 투자 현황에 관한 가장 종합적인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현재로서는 2018년에 출간한 보고서가 가장 최근 자료인데, [2]2017년 말 시점의 현황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따르면 지속가능 투자 자산 총액은 30.7조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2015년말 대비 2년 사이에 34% 증가한 액수다. 지역별로는 유럽이 14조 달러로 전체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고 미국이 12조 달러로 그 뒤를 따르고 있다. 미국의 전체 금융자산 규모가 훨씬 크다는 점을 감안하면, 적어도 지금까지는 유럽이 지속가능 투자를 선도해 왔다. 그러나 최근 성장세는 유럽이 가장 뒤지는데, 유럽의 지난 2년간 증가율은 11%로서 일본(307%), 호주·뉴질랜드(46%), 캐나다(42%), 미국(38%) 지역이 훨씬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그런데 30.7조 달러는 이들 지역 전체 운용자산(managed asset)의 약 26%를 차지하는 것으로, 지속가능 투자 자산의 비중이 작지는 않은 편이다. 지역별로 보면, 유럽에서는 전체 운용 자산의 49%가 지속가능 투자 자산으로 분류되고 있는 반면에 미국에서는 아직 26% 정도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은 최근의 빠른 성장에도 불구하고 전체 운용 자산의 18%에 지나지 않아 아직 지속가능 투자가 초기 단계임을 알 수 있다.

   

                                [2] 전세계 지속가능 투자 자산 현황, 2016-2018

                                                                                    (단위: 10억 달러)

                                주: 각국 화폐 단위를 각각 2015년 말, 2017년 말 달러 환율로 환산하였음

 

 

GSIA가 제시하는 7개 기준에 따라 30.7조 달러를 투자 성격·전략별로 분류한 결과는 [3]과 같다. GSIA는 한 개의 자산이 복수의 전략을 적용할 수 있는 것으로 판단하였기 때문에, 7개 기준 각각의 자산을 합친 액수는 55.1조 달러로 전체 자산 총액 30.7조 달러보다 많다. [3]에 따르면, 19.8조 달러가 특정 산업 또는 기업을 투자에서 배제하는 네거티브 스크리닝 투자다. 여기에 OECD, ILO, UN 등 국제기구가 정한 다양한 business practice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기업들을 배제한 Norms-based screening 4.7조 달러를 합하면, 24.4조 달러의 투자 자산이 도덕적·사회적 기준, 즉 가치관에 기초한(values-based) 투자를 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에 비해 ESG integration 방식을 채택한 자산은 17.5조 달러로 아직 스크리닝 투자에 비해 작은 수준이지만, 지난 2년간 69% 성장하여 스크리닝 투자의 31%에 비해서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ESG 활동 성과가 좋은 기업들에 투자하는 Best-in-class 투자, 특정 지속가능 분야(e.g., 녹색 기술, 청정 에너지)에 투자하는 Sustainability themed investing, 그리고 impact 투자는 금액은 적은 편이지만 지난 2년간 빠르게 성장하였다.

 

                      [3] 지속가능 투자 방식·전략별 투자 자산 규모 2016-2018

                                                                                          (단위: 10억 달러)

 

흥미로운 점은, 지역별로 중점적으로 사용하는 투자 전략이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4]에서 보듯이, 유럽 지역은 가치관에 기초한 투자인 스크리닝 투자(55%), Norms-based screening 투자(77%)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편인데 비해, 미국은 ESG integration에서 54%라는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Best-in-class screening(60%), Sustainability themed investing(77%)에서 압도적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미국이 기업들의 ESG 활동 성과와 재무적 성과를 동시에 달성하는 비교적 실증적(positive) 접근 방법을 취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끝으로 임팩트 투자도 66%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미국이 주도하고 있다. 주로 PE/VC들이 임팩트 투자를 이끌고 있는데, 미국에 기반을 둔 PE/VC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4] 지역별 지속가능 투자 방식·전략별 투자 자산 규모 2016-2018

                                                                                          (단위: 10억 달러)

   

전문 자산 운용자들이 운용하는 자산은 소매(retail) 또는 기관(institutional) 자산으로 분류할 수 있다. 소매 자산은 개인 투자자들이 펀드를 금융기관에서 구입하는 자산을 지칭하며, 기관 투자 자산은 각종 연금, 기금, 대학과 같은 자산 소유자들을 대리해서 운용되는 것을 말한다. 기관 투자자들이 금융시장에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지만, 지속가능 투자에 관심을 갖는 개인 투자자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이러한 추세를 반영하여 [5]에서 보듯이 2012년에는 소매 자산 비중이 11%에 불과했는데 2018년에는 그 비중이 25%까지 늘었다.

한편 Morningstar가 좀 더 구체적이고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여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206월말에 지속가능 펀드 자산이 처음으로 1조 달러를 돌파하였다. Morningstar는 개방형 펀드(open-end fund)ETF 중에서 ESG 기준을 자산 선택에서 중요한 기준으로 사용하거나, 지속가능 관련 테마에 투자하고, 또는 측정 가능한 임팩트를 미칠 목적으로 투자하는 펀드만을 대상으로 골랐다. 그러나 단순한 스크리닝 투자는 포함하지 않았고, 말로는 지속가능 펀드라고 하지만 구체적인 자산 선택 기준을 제시하지 않은 펀드도 제외하였다고 한다. [5]에 따르면 대부분 펀드로 투자되는 소매 자산이 30.7조 달러의 25%7.7조 달러에 이르는데, 이는 Morningstar가 추산한 1조 달러보다 훨씬 큰 숫자다. 당연히 1조 달러 돌파는 큰 의미가 있는 숫자이지만, 이 두 숫자들은 지속가능 투자 현황을 파악하는데 있어서 단순히 지속가능” “ESG”라는 용어에 현혹되지 말고 꼼꼼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점을 일깨워 준다.

 

                                           [5] 기관 및 소매 지속가능 투자 자산 현황 2016-2018

   

마지막으로, 지속가능 투자는 어떤 자산(asset class)들에 주로 이루어지는지 살펴보자. [6]에 따르면, 51%의 투자액은 상장 주식에 할당되고 있으며, 그 다음으로 채권이 36%를 차지하고 있다. 부동산, PE/VC에 의한 투자는 각각 3% 수준이고, 헤지 펀드, 현금 및 예금, 상품(commodity), 인프라스트럭쳐 등 기타 자산의 비중이 7%에 이른다.

 

중요한 질문 중 하나는 지속가능 투자자들이 E, S, G 중에서 어디에 더 무게를 두고 있는가이다. 앞의 7개 투자 방식 중에서 임팩트 투자와 Sustainability themed investing은 투자 대상이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E, S 중 어떤 문제에 초점을 맞추었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ESG integration 투자는 다양한 ESG 요인들을 복합적으로 감안하기 때문에 E, S, G를 따로 구분해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이를 간접적으로 살펴 볼 수 있는 자료가 있는데, 유럽 최대의 자산운용사인 Amundi(2019)에 따르면, 유럽의 수동적(passive) 인덱스 투자에서 2010-2013년에는 환경(E) 관련 투자 성과가 좋았고, 그 뒤로는 지배구조(G) 투자가, 그리고 최근에는 사회 문제(S) 해결을 위한 투자가 높은 성과를 보이고 있다. 미국에서는 이처럼 뚜렷한 경향성을 발견하기 어렵지만, 처음에는 지배구조(G) 투자가 성과를 보이다가 그 다음에 환경(E) 투자가 뒤를 이은 것으로 보인다. Amundi는 이런 투자 성과 추이가 ESG 투자자들의 투자 실행 추이(시점)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고 보고 있다.

 

                                              [6] 지속가능 투자 자산 배분 현황 2018

 

지금까지 많은 숫자와 표를 나열했는데, 그래서 결론이 뭐라는 건가?

이제 지속가능 투자가 대세로 자리 잡았다는 말인가? 이에 대한 대답은 아직까지는 대세가 아니다.지속가능 투자액 30.7조 달러가 전체 운용자산의 26%를 차지하지만 이 숫자가 지속가능 투자 현황을 제대로 보여준다고 보기에는 상당히 과장된 것이다. 앞에서 지적하였듯이 Negative screening($19.8) Norms-based screening($4.7) 투자를 합한 스크리닝 투자가 24.4조 달러에 달한다. 물론 이러한 스크리닝 투자가 지속가능 투자의 한 방법으로 오랫동안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다양한 ESG 요인들을 감안한 분석을 바탕으로 투자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배제 절차를 활용한 투자 방법이 이렇게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이를 모두 지속가능 투자, 특히 ESG 투자라고 부르는 것은 쑥스러운 일이다. 또한 자칭 지속가능 펀드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하고 있으나, 이들은 대개 ESG 관련 주식의 비중을 조금 높였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펀드를 구성하는 나머지 주식들은 일반적인 펀드들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런 점에서 지속가능 펀드라는 용어는 일정 부분 본질을 오도하는 측면이 있다.

그럼 앞으로의 전망은 어떤가? 바로 뒤에서 설명할 여러 가지 요인으로 말미암아 ESG 투자는 자본시장에서 큰 흐름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5. Why ESG investing: Main drivers

 

지난 10년간 ESG 투자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게 된 데는 다음과 같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였다.

 

5.1 기후변화: 지구 온난화 위협

 

나는 자본시장의 내부적 요인들보다 기후변화 이슈가 투자자들의 ESG 투자에 대한 관심을 촉발한 가장 근본적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지구 온난화에 대한 우려는 1980년대 이래 지속적으로 제기된 문제이며, 국제사회도 비록 많이 부족하긴 하지만 1997년 교토 의정서(Kyoto Protocol) 체결 등을 통해 국제적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통제하려는 노력을 해왔다. 그러나 이런 노력은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2005년 미국 허리케인 카트리나를 필두로 이상기후로 인한 피해가 속출하면서 지구 온난화가 인류 미래를 위협할 수 있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기 시작했다. 이에 201512월 국제 사회는 교토 의정서에 비해 훨씬 더 강력하고 강제력이 있는 파리협정을 체결하였다. 파리협정은 산업혁명 이후 지구 평균온도 상승을 2보다 훨씬 아래(well below)로 유지해야 하고 1.5까지 제한하도록 노력한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하였고, 이의 달성을 위해 189개 국가들이 각각 구체적인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제시하였다. 참고로 산업혁명 이후 현재까지 지구온도는 약 1~1.2상승하였다.

투자자들도 온실가스 등 기후변화가 투자에 큰 위협요인이라고 인식하기 시작했는데, 파리협정이 이들에게 보다 구체적인 행동을 취할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블로그 (1)에서 보았듯이, 20171212, 파리에서는 파리협정 채택 2주년을 기념하여 Climate Action 100+(기후행동 100+)이니셔티브가 출범하였다. ‘기후행동 100+는 전 세계 225개 대형 기관투자자들이 기후변화에 공동으로 대응하기 위하여 발족한 협의체다. 이 투자자들은 전 세계 산업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80%를 차지하는 161개 기업을 선정하여, 이 기업들이 (1)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관리 체계를 갖추고, (2) 파리협정에서 제시한 목표에 맞게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며, (3) 온실가스 배출 및 감축 관련 정보를 상세히 공개하도록 독려하겠다고 밝혔다.

물론 투자자나 기업들이 기후 및 환경 문제에 대응해 온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런데 투자자들이 이렇게 기후변화 이슈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예컨대 연금의 경우 수십 년에 걸쳐서 안정적인 투자수익을 실현해야 하는데 지구 온난화가 심각하게 진행되면 투자 자산 상당수가 큰 재무적 위험에 노출되어 장기적인 투자수익 실현이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본시장에서 기업 가치는 "그 기업이 미래에 벌어들일 것으로 예상되는 이윤의 현재가치를 합한 금액"이다. 따라서 특정 기업의 이윤이 장기적으로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면 그 기업의 주가는 하락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주가는 그 기업의 단기성과에 훨씬 큰 영향을 받기 때문에, 기후변화로 어떤 회사가 20년 후에 어려움에 처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 기업의 주가가 크게 하락할 가능성은 없었다. 도리어 그 회사가 미래의 기후변화 위협에 대비해서 오늘 기술개발이나 시설 투자를 해야 하기 때문에 이윤이 줄어들었다고 발표하면 도리어 주가가 크게 하락할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지금까지 기후변화의 위험을 인지하면서도 그것에 대비하기 위한 기업들의 움직임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최근 지구온난화의 위험이 가시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함에 따라, 이런 위험이 먼 훗날에나 일어날 일이라고 생각해서 특정 기업의 이윤 흐름을 예측하는데 반영하지 않았던 위험들을 보다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특히 일반 투자자에 비해서 훨씬 장기적인 투자수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연금들이 투자 포트폴리오를 구성함에 있어서 이런 요인들을 더 중요하게 감안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바로 뒤에서 설명하겠지만, 대규모 자산운용사 등 대형 기관투자자들은 운용자산 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에 자산 분산을 통해서 지구 온난화와 같은 글로벌 차원의 위험을 피할 방법이 없다.

 

5.2 초대형 자산 운용사 및 기관 투자자: Universal owners

 

자본 시장은 집중도가 높은 편이다. 2019년 현재 Top 5 자산 운용사가 운용 자산(externally managed assets)22.7%를 맡고 있고, Top 1034%를 차지한다. 그리고 세계 3대 자산 운용사인 BlackRock, Vanguard, State Street이 보유한 주식을 합하면 이들은 미국 S&P 500 기업 88%의 대주주이다. 이처럼 이들은 전 세계 자본시장에서 워낙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서 글로벌 경제 전반의 건강에 크게 좌우되는 한편 또 글로벌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따라서 이러한 초대형 자산 운용사 및 기관 투자자들을 종종 universal owner라고 부른다. 재무이론에 따르면 위험도가 서로 다른 자산들을 포트폴리오에 편입함으로써 위험을 통제하고 투자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 universal owner들은 이런 방식으로 시스템 리스크(system-level risk)를 줄이기 어렵다. 예컨대 소규모 투자자들은 예컨대 기후변화에 따른 리스크 헷지를 위해 금이라든가 기후변화에 따른 위험에 처했을 때 필요한 제품을 판매하는 기업들에 투자할 수 있다. 그렇지만 universal owner들은 수 조 달러의 자산을 운용하고 있기 때문에 글로벌 경제 전체의 위험을 헷지할 방법이 없다. 그러니 그들은 지구가 멸망하도록 방관할 수는 없는 입장이다. 그리고 앞에서 지적하였듯이 연금, 보험 등 대규모 기관 투자자들은 아주 장기간에 걸쳐 연금 또는 보험금을 지급해야 하기 때문에 장기적인 투자수익을 중요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5.3 ESG 투자에 대한 수요 증가

 

연기금 등 기관 투자자들이 자산 운용사에 ESG 투자 방식을 요구하는 추세가 늘고 있음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다. 대형 기관 투자자들은 ESG 투자가 더 좋은 투자수익을 가져다 줄 것임을 인식하기 시작했고, 더 나아가 이들 중 상당수는 비재무적 목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이제는 자산 보유자들에게 ESG 투자가 무엇인지 설명하고 왜 이것이 중요한지를 설득할 필요성이 줄어들고 있다.

그런데 ESG 투자에 대한 관심이 기관 투자자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금융기관에 자산관리(wealth-management)를 맡기는 초우량 고객들 중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기여할 수 있는 투자를 하고 싶다.”는 숫자가 늘고 있다고 한다.

또한 밀레니얼(Millennial) 세대의 등장ESG 투자 수요 확대의 중요한 동인으로 꼽히고 있다. 지금 베이비부머 세대에서 그 자녀들에게 30조 달러에 달하는 부의 이전이 일어나고 있는데, 이 자녀들은 주로 밀레니얼 세대에 속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밀레니얼 세대는 투자에 대한 생각이 부모 세대와 완전히 다르고, 지속가능 및 사회적 책임 투자에 대해 더 호의적이면서도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의 견해를 적극적으로 피력하는 편이다. [그림 3]ESG 투자에 관한 밀레니얼 세대의 견해를 몇 가지 숫자로 나타내고 있다. 한 보고서에 따르면, 앞으로 20-30년간 밀레니얼 세대는 미국에서 15-20조 달러를 ESG 투자에 사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림 3] 밀레니얼 세대의 특징

 

5.4 ESG 투자의 재무적 성과(Financial returns)

 

아직도 적지 않은 기업 경영자나 자산 운용자들은 ESG 투자가 사회적 책임 투자의 경우처럼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기여할지는 모르지만 이는 재무적 성과를 희생하고 얻은 결과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이는 더 이상 사실이 아니다. 연구자, 자산 운용사, 투자지원 서비스 기업 등이 ESG 투자의 재무적 성과에 대해서 수많은 연구를 내놓고 있다. 사회적 책임 투자나 지속가능 투자의 재무적 성과에 관한 초기 연구는 부정적 견해를 가진 연구들도 많았지만, 최근 연구 결과들은 대체로 ESG 투자와 재무성과 간에 적어도 음이 아닌(non-negative) 관계가 존재함을 보여주고 있다. 대표적으로 Friede, Busch and Bassen2015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ESG 투자와 투자 수익률의 관계를 분석한 2,000여개의 선행 연구를 분석하였는데, 이에 따르면 불과 8%의 연구만이 ESG 투자가 투자 수익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63% 연구는 긍정적인 영향을, 나머지 30% 가까운 연구는 특별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결과를 보고하였다. 또한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교수들이 행한 최근의 몇몇 연구에서도 ESG 성과가 좋은 기업들이 재무적인 성과가 좋았다는 결과를 제시하고 있다. 자산 운용사와 투자지원 서비스 기업들도 ESG 투자가 좋은 투자 성과를 가져온다는 연구 결과를 많이 발표하고 있는데, 특히 MSCI는 활발한 연구를 통해 ESG 투자의 재무적 성과를 뒷받침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세계 최대의 자산 운용사인 BlackRock은 다소 보수적이긴 하지만 여전히 다음과 같은 말로 ESG 투자의 성과를 옹호하고 있다. “ESG 투자는 투자 수익률을 높이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여전히 회색 영역에 속하지만, 우리는 점점 더 확신을 가지고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우리는 투자자들이 ESG 요인들을 전통적인 포트폴리오에 고려하면서도 투자성과를 거의 희생할 필요가 없다라고. 우리는 ESG 친화적인 포트폴리오가 위험 요인의 영향을 완화하는데 기여함으로써 장기적으로 회복력이 강한(resilient) 포트폴리오가 되리라고 믿는다. 이제 중요한 질문은 언제 또는 왜 ESG를 고려할 것이냐가 아니라 어떻게 할 것이냐다.” BlarkRock은 주식시장에서 ESG 투자와 전통적 투자의 성과를 비교한 결과를 [7]에 제시하고 있는데, 여기에 따르면 ESG 투자 포트폴리오의 리스크 지표들이 전통적 포트폴리오에 비해 비슷하거나 더 낮은 편인데도 불구하고, 연 투자 수익률은 같거나(미국) 높은(미국 이외, 신흥시장) 수준이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ESG를 감안한 포트폴리오 기업들의 ESG 스코어는 그렇지 않은 기업들에 비해서 높았다. (여기서 ESG 투자는 스크리닝 투자는 배제하였다.)

 

                        [7] ESG 투자 vs. 전통적 투자: 지역별 주식 시장 비교, 2012-2018

 

이처럼 대부분의 연구 결과들은 ESG 투자가 더 높은 수익을 가져다준다고 주장하는데, 여전히 현장에서 실제로 투자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ESG 투자 성과에 대한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럴까? 첫째는 무늬만 ESG 투자가 많은데 대개 이들의 투자 성과가 좋지 않기 때문이다. 스크리닝 투자가 대표적인 예인데, 앞에서 지적하였듯이 이 투자는 재무성과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스크리닝 투자처럼 너무나 명백한 경우는 제외하더라도, 적절한 ESG 요인들을 투자분석 모형에 통합(ESG integration)함으로써 ESG로 인한 위험은 줄이고 새로운 기회는 잘 포착하여 투자 수익을 올리는 것이 절대 쉬운 일은 아니다. 이러다 보니 어정쩡하게 ESG 투자를 하면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ESG Integration Paradox라는 말까지 등장하는 형편이다.

그런데 ESG integration을 제대로 하려면 중요한(material)” ESG 이슈가 무엇인지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각 산업마다 중요한 ESG 이슈는 다르다. 예컨대 온실가스 배출이 전력 산업에서는 중요하지만 금융 산업에서는 그렇지 않다. 어떤 기업이 모든 ESG 이슈를 잘 하겠다고 덤벼들면 ESG 등급을 잘 받을지는 모르지만 그로 인한 비용 지출은 큰데 비해 실제로 수익성, 더 나아가 기업가치 제고에는 도움이 안 될 것이다. 그에 비해 자신에게 중요한 이슈만을 골라서 집중적으로 대응한다면 좋은 성과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한 연구에 따르면 중요한 ESG 이슈에서 좋은 등급을 받은 기업들은 낮은 등급의 기업들에 비해 투자 수익률이 높았지만, 중요하지 않은 ESG 이슈에서 좋은 등급을 받은 기업들은 그렇지 않은 기업들에 비해 투자 수익률이 높지 않았다. 이제 투자자들은 막연히 지속가능성을 위한 책무를 다하겠다고 이야기 하는 기업들보다는, 재무적 성과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ESG 이슈에 전념하는 기업들을 자신의 투자 포트폴리오에 편입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5.5 수탁자 의무(Fiduciary duty)에 대한 인식 전환

 

ESG 투자를 하면 재무적 성과가 나빠진다는 믿음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 수탁자 의무 때문에 ESG 투자를 하기 어렵다는 믿음이다. , 자산 보유자의 자산을 운용하는 자산 관리자들은 위탁자에게 가능한 한 높은 투자 수익을 돌려주어야 하는데, 이 관점에서 보면 ESG 투자는 경제적인 목표 이외에 사회적 가치도 추구하는 것이 되어 문제가 될 수 있다. 더욱이나 ESG 수익성이 나쁘다는 인식이 퍼져있으니, 자칫 포트폴리오 수익률이 나쁘기라도 하면 ESG 투자를 했기 때문이라는 비난을 받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굳이 ESG 투자를 할 유인이 없다는 뜻이다. 이런 경향은 유럽보다 미국에서 상대적으로 강하게 나타났는데, 예컨대 2008년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ERISA(Employee Retirement Income Security Act) 해설 자료에 따르면 수탁자들이 연금의 경제적 목표 이외의 다른 요인에 근거해서 투자 결정을 내리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20년 사이에, 많은 연구들이 환경 이슈 같은 ESG 요인들이 재무적 성과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따라서 자산 관리자들이 이런 요인들을 고려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이제는 이런 요인들이 단지 사회적 이슈라는 이유만으로 무시되어서는 안 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자산 관리자들은 이제 자신의 투자 포트폴리오에 포함된 기업들이나 해당 산업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ESG 요인들이 무엇이며, 그것이 어떻게 투자 성과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정책 및 규제 당국들도 이런 변화에 발맞추어 투자에서 ESG 요인을 고려하는 것이 수탁자 의무 위반이 아니라는 입장을 내놓고 있고, 관련 지침이나 규정에 이러한 입장을 반영해 나가고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 노동부도 2015년 새로운 ERISA 해설 자료를 발표하였는데 여기에서는 2008년 자료가 수탁자가 ESG 요인들을 고려하는 것을 부당하게 억제하였다.”고 평가하였다. 더 나아가 이 자료는 ESG 요인들이 연금 자산의 경제적 가치에 영향을 줄 수 있으며, 따라서 수탁자들이 이런 요인들을 고려하는 것이 법적으로 정당할 뿐 아니라 필요한 조치라고 언급하고 있다. OECD(2017)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대부분의 OECD 회원국들은 수탁자 의무를 규제하는 지침, 보고 규정, 스튜어드십 코드, 기업의 정보 공개 규정, 증권거래소 규정 등 수많은 규정의 제·개정을 통해서 투자자들이 ESG 요인들을 투자결정에 반영하는 것을 장려하거나 심지어는 의무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물론 투자자들이 ESG 투자를 공격적으로 실행에 옮기기에 아직 아쉬운 점이 많다. 여전히 수탁자 의무에 대해 애매한 규정들이 존재하고, 기업들이 ESG 요인들을 보고하는 방식에 대한 체계적인 공통 기준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회계 자료처럼 ESG 요인을 기업 평가에 반영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다. 그러나 이제는 수탁자 의무가 ESG 투자를 가로막는 요인이라고 보던 시기는 지나갔으며, 아직도 남아있는 불충분한 규정 및 제도는 수탁자로서의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기 위해서 극복해나가야 할 과제가 되었다.

 

5.6 이해관계자 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의 등장?

 

어떤 이들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 대표되는 기업 환경 변화가 ESG 투자를 촉진하는 요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기업이 모든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위해 활동하는 체제를 말한다. 이 체제 하에서 기업의 목적은 이해관계자들을 희생을 바탕으로 한 이윤 극대화 및 주주가치 극대화가 아니라, 소비자, 노동자, 납품 기업, 사회 공동체의 장기적 가치 창출을 위해서 활동하는 것이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주주를 포함한 모든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충족시키는 것이 모든 비즈니스의 장기적 성공과 건강에 필수적이라고 믿는다.”

그럼 지금까지 기업은 이해관계자의 이익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사업을 영위해 왔단 말인가? 그렇지는 않다.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의 기업들은 당연히 법과 윤리적·도덕적 관습에 체화된 사회적 규칙을 준수하면서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도록 규율되어 왔다. 물론 아주 비도덕적인 행동(practice)을 일삼거나 불법을 저지르는 기업들이 적지 않았으나 대체로 이런 일탈 행동은 자본주의 체제의 안정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대부분의 기업들은 이윤 극대화를 위해 - 즉 자신의 이익을 위해 - 당연히 소비자 가치 창출, 우수 인력 확보, 질 좋은 납품 기업 유지를 추구해왔다. 불량 제품을 생산하거나 노동력 및 납품 기업을 착취하는 기업들은 단기적으로 이익을 낼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시장에서 퇴출되었다. 이렇게 해서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들이 시장에서 경쟁하는 자본주의 체제는 장기적으로 유지 가능한 체제로 자리 잡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은 노동자나 납품 기업들에 대해 갑을 관계를 유지하면서, 법적으로 정한 기준을 어기지 않고 시끄러운 문제가 터지지나 않으면 되는 것이지, 그들이 정말로 잘 되어야 기업들도 잘 된다는 식의 생태계적인 인식을 가진 기업은 별로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지난 20-30년간 발생한 환경 문제 및 사회 이슈들은 그 동안의 규범이나 관행에 오랜 기간 익숙했던 기업들에게 매우 낯선 것이었다. 기후 환경 문제는 앞에서 언급하였으므로 몇몇 사회 이슈들만 예로 들어보면, 기업들은 공정무역, 납품 기업의 노동 조건, 양성 평등, 다양한 성정체성 배려, 생명윤리, 고객정보 보호 등 이슈를 다루는데 서툴렀고, 이런 이슈를 잘 처리하지 못하면 기업이 큰 위기를 맞는다는 인식 자체가 없었다. (최근의 페이스북, 우버가 겪었던 어려움을 생각해보라.) 여기에 국제 금융 위기는 금융 기업들의 탐욕과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를 인식시켜준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제 투자자와 기업들은 단기적 이윤 추구를 장려하는 자본시장 시스템이 개선돼야 하며, 이해관계자들과 관련된 사회적 이슈들이 수동적으로 관리하거나 대응할 대상이 아니라 이해관계자들과 함께 가치를 창출해나가는 것이 자신들의 이익에 합치한다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사회적 이슈들에 대한 인식 변화가 ESG 투자를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지적은 옳다. 그러나 이런 변화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의 등장, 기업 목적 또는 지배구조의 변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많은 이들은 20198월에 있었던 Business Roundtable(BR)을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의 출범을 알리는 계기로 인식하고 있다. 미국 주요 대기업 CEO들의 모임인 Business Roundtable181명의 CEO가 서명한 Statement on the Purpose of a Corporation을 발표하였다. BR은 주기적으로 기업 지배구조의 원칙을 발표해왔는데, 과거에는 일관되게 주주 우선주의(shareholder primacy), 즉 기업은 주주 이익을 위해 존재한다는 원칙을 지지해왔다. 그러나 이번에 발표된 선언은 기업이 주주뿐 아니라 소비자, 노동자, 납품 기업, 지역 사회 등 모든 이해관계자를 배려해야 한다는 새로운 원칙을 담고 있다. 다소 길지만 BR의 새로운 선언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발표문 전문을 인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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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atement on the Purpose of a Corporation

 

Americans deserve an economy that allows each person to succeed through hard work and creativity and to lead a life of meaning and dignity. We believe the free-market system is the best means of generating good jobs, a strong and sustainable economy, innovation, a healthy environment and economic opportunity for all.

 

Businesses play a vital role in the economy by creating jobs, fostering innovation and providing essential goods and services. Businesses make and sell consumer products; manufacture equipment and vehicles; support the national defense; grow and produce food; provide health care; generate and deliver energy; and offer financial, communications and other services that underpin economic growth.

While each of our individual companies serves its own corporate purpose, we share a fundamental commitment to all of our stakeholders. We commit to:

 

- Delivering value to our customers. We will further the tradition of American companies leading the way in meeting or exceeding customer expectations. 

- Investing in our employees. This starts with compensating them fairly and providing important benefits. It also includes supporting them through training and education that help develop new skills for a rapidly changing world. We foster diversity and inclusion, dignity and respect.

- Dealing fairly and ethically with our suppliers. We are dedicated to serving as good partners to the other companies, large and small, that help us meet our missions.

- Supporting the communities in which we work. We respect the people in our communities and protect the environment by embracing sustainable practices across our businesses.

- Generating long-term value for shareholders, who provide the capital that allows companies to invest, grow and innovate. We are committed to transparency and effective engagement with shareholders.

 

Each of our stakeholders is essential. We commit to deliver value to all of them, for the future success of our companies, our communities and our cou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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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의 선언이 모든 이해관계자를 위해서 일하겠다는 점을 명시적으로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라고 보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맨 마지막에는 주주들을 위해 장기적 가치 창출을 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그리고 이어서 나오는 문장은 주주들이 자본을 제공하기 때문에 기업들이 투자도 하고, 성장도 하며 혁신도 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한다. 주주들이 자신들의 가치 창출에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면 그 기업에서 돈을 뺄 것이고, 그러면 고객, 직원, 납품 기업, 공동체에 대한 가치 창출은 없었던 일이 된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위 문장들은 이렇게 읽혀져야 한다. ”우리 CEO들은 고객, 구성원, 납품 기업, 공동체를 위한 가치 창출을 안 하면 단기적으로는 몰라도 장기적으로 기업가치 극대화에 해가 될 것이라는 점을 깊이 인식한다.“ 이 문장 속에서 여전히 가장 중요한 것은 기업가치 극대화에 있다. 뿐만 아니라, 첫 번째 문단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들어 있다. ”We believe the free-market system is the best means of generating good jobs, a strong and sustainable economy, innovation, a healthy environment and economic opportunity for all.“ 자유 시장 경제체제가 무엇인가? 자본가들이 자신이 투자한 자본에 대한 정당한 이윤을 위해 활동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경제체제라는 믿음이다. 더 나아가 이 선언에 기업 지배구조의 변화에 대한 언급은 없다. , ”CEO의 임면권을 가진 주주총회-주주의 위임을 받아 경영진을 관리·감독하는 이사회-CEO“ 간의 관계는 지금과 동일하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BR 선언의 내용은, 이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가 되었으니 CEO가 기업가치 극대화를 위해서 행동하면 안 된다거나, 이사회 구성이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과는 거리가 멀다. (독일 등에서 관찰되는 이사회 형태가 바람직한지에 대한 논의를 여기에서 하는 것은 지나치게 논의를 확장하는 것이니, 여기서는 이 정도에서 멈춘다.)

지금까지 논의의 핵심(bottom line)은 다음과 같다. “외부 환경과 사회 인식 변화가 기업 경영과 투자에 있어서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투자자들(과 기업인들)이 깊이 인식하고, ESG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지 않으면 장기적인 기업가치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러나 다행히 장기적으로 ESG 투자가 기업가치 상승에도 긍정적이라는 가능성을 확인하였으므로 그러한 방향으로 적극적으로 투자할 유인이 생겼다.”

 

 

6. How: ESG Investing Strategies

 

ESG 투자의 시작은 기업의 ESG 활동 평가에서 시작한다. 누가 어떤 분야에서 잘하는지, 또는 못하는지를 알아야 해당 기업에 대한 투자 여부를 결정할 수 있고, 또 그 기업의 ESG 활동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engagement)할 수 있기 때문이다. ESG 투자 방식은 일반적인 투자와 마찬가지로, 각종 ESG 인덱스에 기초한 펀드에 투자하는 수동적 투자 방식이 있고, 자산 운용자들이 정교한 투자 분석 모형에 ESG 요인들을 통합하여 투자 결정을 하는 능동적 투자 방식이 있다. 한편 기관 투자자나 자산 운용사들은 특정 기업에 대한 투자 여부를 결정할 뿐 아니라, 자신이 지분을 가진 기업들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ESG 활동을 장려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이제 (1) 기업 평가, (2) 투자 결정, (3) 기업에 대한 영향력 행사에 대해서 하나씩 살펴본다.

 

6.1 ESG 등급 평가

 

기업의 ESG 등급 평가 논리와 과정은 기본적으로 신용 등급과 동일하다. 여기서는 대표적인 ESG 등급 평가기관인 MSCI의 평가 방법을 소개한다. 평가 과정은 [그림 4], [그림 5]에 도식화되어 있다.

(1) 평가는 당연히 데이터 수집부터 시작된다. 평가기관들은 기업들이 공개한 자료는 물론이고, 정부, 규제기관, NGO 자료 등 활용 가능한 모든 자료를 수집한다.

(2) 다음에는 이들 자료를 활용하여 한 기업의 ESG 관련 위험 및 기회 요인이 동종 기업들에 비해 어느 정도 수준인지(exposure scores), 그리고 그 기업의 상대적인 ESG 관리 역량은 어느 수준인지(management scores)정량적인 지수(metrics)로 측정한다. 리스크 요인 관련 항목은 80, 관리 역량 관련 항목은 160개다.

(3) 이제 위험·기회 요인, 관리 역량 지수 240개를 37개의 ESG 이슈 별로 묶어서 각 이슈에 대해서 0~10 스케일로 평가 점수를 매긴다. 37개의 ESG 이슈 상세 내역은 [8]에 제시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ESG 이슈는 “3 Pillars(E, S, G)-10 Themes-37 Key Issues”의 계위로 구성되어 있다. 예컨대, Environmental Pillar에는 Climate Change를 포함한 4개의 Theme이 있으며, 다시 Climate Change ThemeCarbon Emission, Product Carbon Footprint 4개의 Issue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이슈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1년 주기로 업데이트 된다. 37개 이슈 별로 평가 점수가 주어지면, 테마 별로 해당 이슈들의 점수를 가중 평균한다. 이때 각 이슈들에 부여되는 가중치는 그 이슈가 해당 산업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시기적으로 얼마나 빠르게 나타날지 등을 감안하여 결정된다. 이렇게 해서 10개 테마에 대해 주어진 평가 점수는 다시 각 테마 별 가중치를 감안하여 E, S, G Pillar의 평가 점수를 결정하는데 사용된다. 마지막으로 이 세 점수를 가중 평균하면 하나의 숫자로 표시된 해당 기업의 ESG Issue Score가 산출된다.

(4) 이 점수를 기반으로 최고 등급 AAA부터 최저 등급 CCC까지 표시한 것이 기업의 ESG 등급이 된다.

 

MSCI는 이 자료를 활용하여 다양한 산출물과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대표적으로 기업 및 산업 리포트 발간, 포트폴리오 분석, 데이터 제공 서비스, 다양한 ESG 포트폴리오 인덱스 개발 등을 들 수 있다.

투자자, 자산 운용사, 기업 등 MSCI의 다양한 고객들도 이 자료를 폭 넓게 사용한다. 투자 결정에 필요한 계량 분석에 활용한다거나, 투자 포트폴리오 구성, 인덱스 기반 투자 상품 개발 등에 활용되며, 투자자들이 지분을 가지고 있는 기업들의 ESG 활동에 관여할 때도 기초자료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기업들도 이 자료를 리스크 매니지먼트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림 4] ESG 평가 등급 부여 방법 (1)

 

                        [그림 5] ESG 평가 등급 부여 방법 (2)

    

                        [ 8] ESG Key Issues List & Hierarchy

  

6.2 ESG Index Fund 투자

 

ESG를 고려하지 않은 일반 투자에서도 신용평가 기관들은 S&P 500, Dow Jones Industrial Index 등 많은 인덱스를 개발하여 다양한 목적으로 활용한다. 마찬가지로 ESG 평가기관들도 기업들의 ESG 등급 정보를 활용하여 다양한 인덱스를 구성하고 있다. 일반 투자의 경우에서와 같이, 이러한 ESG 인덱스는 주로 개인 투자자 같은 수동적 ESG 투자자들이 가입하는 다양한 ESG 인덱스 펀드를 만드는 데 활용되고 있다.

여기서는 MSCI의 사례를 통해 ESG 인덱스 구성 방법 및 종류에 대해서 알아본다. MSCI는 세계 주식시장 지수(ACWI, All Country World Index)를 대표 지수 중 하나로 사용하고 있는데, ESG 인덱스들은 ACWI를 벤치마크 인덱스로 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ESG 요인들을 고려함으로써 ACWI변형하여 만들어진다. 인덱스를 만들 때 ESG 요인들을 고려하는 방법은 다음의 네 가지가 있다.

(1) Exclusionary screening: 이는 앞에서 언급한 스크리닝 투자 방식과 마찬가지로 특정 기업을 벤치마크 인덱스에서 제외하는 방법이다. 특정 기업을 배제하는 이유는 다양한데, 무기, 담배 판매 기업과 같이 가치관에 입각하여 배제하는 경우, 논란이 많은 무기 제조업체에 대한 투자를 금지하는 규정 때문에 투자를 하지 못하는 기관 투자자, 화석연료처럼 경제적 리스크가 큰 기업에 대한 투자를 배제하는 경우 등이 있다. 물론 투자 배제가 기업 레벨이 아니라 산업 레벨에서 행해지는 경우도 있다.

(2) Best-in-class selection: 예컨대 MSCI ESG Leaders Index는 유동주식 시가총액 기준으로 상위 50%까지를 ESG 등급이 가장 높은 기업들로 채우는 인덱스이다. 그리고 MSCI SRI Index는 상위 25% 기업을 선택한다. 두 인덱스들은 모든 ACWI 기업을 기준으로 할 수도 있으나, 산업과 지역의 편중 현상을 피하기 위해 특정 산업 또는 지역에서의 Best-in-class 기업들을 선택하여 인덱스를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3) Weight tilt: 벤치마크 인덱스 포트폴리오를 기준으로 ESG 등급과 ESG 등급 추이를 감안하여 각 기업의 비중에 가중치를 주는 방식이다. 예컨대 등급이 높고 상승 추세를 보이고 있으면 가중치를 2로 하고, 등급이 낮은데 하락하는 상황이라면 가중치를 0.5로 줄인다.

(4) Optimization: MSCI ESG Focus Index는 트래킹 에러(tracking error)를 일정 수준 이하로 유지하는 제약 조건 하에서 벤치마크 인덱스 레벨에서 ESG 스코어를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트래킹 에러는 벤치마크 인덱스와 새롭게 만들어진 인덱스의 투자 수익률 차이의 표준편차를 말한다. 수식으로 표시하면,

 

                   Tracking Error = Standard Deviation of (P B),

                                 where P is portfolio return and B is benchmark return.

 

트래킹 에러가 크다는 것은 새롭게 만든 포트폴리오가 벤치마크 인덱스의 성과와 큰 차이를 보인다는 뜻이다. 만약 새 포트폴리오와 벤치마크의 평균 수익률은 비슷한데 트래킹 에러가 크게 나타난다면, 이는 새 포트폴리오가 벤치마크에 비해 수익성은 신통치 않은데 변동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하니 굳이 새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투자하느니 그냥 벤치마크 인덱스에 투자하는 것이 더 낫다. 따라서 벤치마크를 기준으로 하는 새 인덱스를 만들 때 이러한 변동성을 일정 수준 이하로 통제하는 경우가 많다.

[9]에서는 지금까지 설명한 ESG 인덱스 종류와 구성 방법을 설명하였고, [그림 6]은 ACWI와 여러 ESG Index를 비교한 것이다.

 

                          [9] ESG Index의 종류와 구성 방법

 

                         [그림 6] ESG Index 간의 구성 방법 비교

 

6.3 (Full) ESG Integration 방식 Asset Pricing Model

 

전문 자산 운용자들은 단순히 인덱스 펀드에 투자하는 수동적인 투자 방식이 아니라, 주식가치를 산정하는 모형(asset pricing model)을 활용하여 투자 대상 주식을 선정하는 능동적 투자 방식을 통해 포트폴리오를 구성한다. 이 모형에서 주식 가치를 결정하는 요인들로 market return, size, value(book-to-market value ratio), profitability, investment 등이 주로 포함되는데, 모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이 글의 범위를 벗어난다.

ESG integration 투자 방식은 주가 산정 모형에 ESG 요인들을 포함시키는 것이다. 비교적 정형화된 전통적 모형과는 달리, 어떤 ESG 요인들을 어떻게 포함시킬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확립된 이론이 없는 상황이다. 이는 정량화된 ESG 데이터를 구하기가 쉽지 않고, 중요한(material) ESG 요인들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론적·실증적 증거들이 부족한 상태이며, ESG 요인들과 기존의 재무적 요인들 간의 관계에 대해서도 많은 논란이 있는 등 많은 어려움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어려움으로 말미암아, ESG 분석은 기존 정량적 모형에 정성적 요인으로 추가되는 경우가 많다. 

 

6.4 기업에 대한 영향력 행사(engagement)

 

투자자들은 일반적으로 자신의 선호에 따라 특정 기업의 주식을 매입 또는 매도함으로써, 그 기업의 주가나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나 대형 기관 투자자들과 자산 운용사들은 “universal owner”이기 때문에 어떤 기업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그 기업의 주식을 완전히 매각하는 것이 용이하지 않다. 특히 인덱스 펀드에 편입된 주식은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매각이 어렵고, 지분율을 크게 올리거나 낮추는 것도 그들의 투자 원칙에서 어긋날 수 있다. 또한 연기금과 같은 기관 투자자들은 특성 상 주식을 장기적으로 보유하기 때문에 역시 지분율 변화를 통해 기업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어렵다. 따라서 과거에는 기업 경영자 입장에서는 이들 기관 투자자들은 지분율은 높지만 자신들의 행동에 관여하지 않는 비활동적이고 다루기 편한주주들로 간주되기 십상이었다. 이런 사정들을 감안할 때, 기업들의 ESG 활동을 평가하여 등급을 매기고 이를 투자 결정에 반영한다고 해도 이것만으로는 ESG 투자가 기업들의 ESG 활동을 획기적으로 바뀌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ESG 투자가 화두가 되면서 이들의 투자 전략이 바뀌기 시작했다. 이제 대형 투자자들은 기업들의 바람직한 ESG 활동을 유도하기 위해서 다양한 형태로 기업 활동에 관여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연구들에 따르면 이러한 관여가 투자 수익률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투자자들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상황에 따라서 경영진과의 직접적 대화, 주주 제안, 주총 표결(proxy voting), 지분 매각, 공공 정책에 대한 참여 등의 방법이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다. 물론 주주 제안이 이루어지고 이것이 주총 표결을 통해서 통과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한 연구에 따르면 설사 주주 제안이 다수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런 주주 제안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업의 관련 ESG 행동이 개선되며 그것은 주가 상승으로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다. 5절 기후변화에 대한 논의에서 소개한 바 있는 기후행동 100+”도 다수의 투자자들이 161개 주요 기업들에게 온실가스 감축과 관련된 중요한 행동 변화를 요구하는 대표적인 사례로서, 실제로 이들 투자자들은 이미 다양한 형태로 이들 기업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여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점에서 단지 ESG 투자를 넘어서 ESG 성과로 연결시키기 위해서 연기금 등 대형 투자자, 자산 운용사의 보다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해 보인다. 그러나 특정 투자자가 특정한 사회적 가치 추구를 위해 주주 제안을 하고 의결권 자문기관(ISS, Glass Lewis)이 이를 지원하는 경우에, 그것이 다른 주주의 이익에 반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의결권 자문기관의 지지를 받는 주주 제안은 통과될 확률이 높으며, 연기금이 제안하고 의결권 자문기관의 지지를 받는 사회적·정치적 이슈에 대한 주주 제안은 주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향이 있다. 이 문제에 대해 컨센서스를 이루기에는 아직 충분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기관 투자자의 이익이 소액주주들의 이익과 합치되지 않을 가능성, 기관 투자자들의 관여가 항상 긍정적이지만은 않을 수 있다는 점은 언급할 필요가 있겠다.

 

 

7. 장애요인과 과제

 

7.1 기관 투자자들이 느끼는 장애요인

 

이제 화제를 바꾸어 ESG 투자의 확산을 막는 요인들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State Street582개 기관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그들이 느끼는 장애요인이 무엇인지 물었는데 그 결과는 [그림 7]에 정리된 바와 같다. 여기에는 모두 7개의 장애요인이 열거되어 있는데, 1, 2, 4위 장애요인은 모두 데이터에 관한 문제이고, 나머지가 낮은 재무성과 우려(3), ESG integration 관련 비용 지출(5), 수탁자 의무에 대한 불확실성(7) 등이다.

 

                       [그림 7] 기관 투자자들이 느끼는 ESG 투자 장애요인

 

과거에 ESG 투자에 장애요인으로 흔히 꼽혔던 낮은 재무성과, 수탁자 의무 등에 대한 기관 투자자들의 우려는 그리 높지 않게 나타난데 비해, 신뢰할 수 있고, 표준화, 정량화된 ESG 관련 데이터가 부족한 점을 가장 큰 애로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바로 이어지는 7.2에서 자세히 논의하도록 한다.

한편 본격적인 ESG 투자를 하기 위해서는 관련 데이터를 투자자가 직접 수집하거나 데이터 제공 기업으로부터 구매해야 하고, 또한 이 데이터를 분석하여 투자 결정에 반영해야 하는데, 이와 관련된 비용이 적지 않다. 특히 인덱스 펀드의 경우에는 기존 S&P 인덱스를 기반으로 한 펀드 상품의 경우 상품을 개발하는데 드는 비용이 무시할 정도로 적은데 비해, ESG 요인을 감안한 인덱스 펀드는 그 비용이 상당히 크다. 한 보고서에 따르면, S&P 계열 인덱스 펀드의 경우 비용이 차지하는 비율이 0.09%인데 반해 30ESG 펀드에서 비용이 차지하는 비율은 평균 0.69%로 나타나, 이것이 ESG 펀드의 수익률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7.2 데이터, 데이터, 데이터

 

지난 몇 년 사이에 ESG 데이터의 양과 질은 현저히 개선되었고, 이것이 ESG 투자 활성화에 기여한 것은 분명하다. 1990년대 초반에는 ESG 데이터를 공개하는 기업이 20개가 채 되지 않았었는데, 2014년에는 그 숫자가 8,000개 이상으로 늘었다. 규제 기관들 또한 기업들의 ESG 정보 공개 의무화에 나서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EU2014년에 종업원 500명 이상의 상장 기업들은 환경, 사회적 이슈, 종업원, 인권, 부패 및 뇌물 방지, 이사회 다양성 등에 관한 회사의 정책, 리스크 및 성과물을 공개하라는 지침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2016년 기준으로 15개 증권거래소가 상장 기업들로 하여금 ESG 관련 보고를 하도록 의무화했고 이 숫자는 그 이후에도 증가했다. 끝으로 몇몇 민간 기구들, 대표적으로 GRI(Global Reporting Initiative), SASB(Sustainability Accounting Standards Board) 등은 재무제표처럼 표준화된 형태로 ESG 지표들을 제공할 수 있도록 방대한 기준을 내놓아서 표준적인 ESG 데이터 생성에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데이터는 여전히 가장 심각한 장애요인이다. 먼저, 기업들의 지속가능성 보고서들은 애초부터 투자자가 아닌 다른 이해관계자들을 타겟으로 작성된 것이어서 투자자들에게는 별 쓸모가 없다. 물론 데이터 제공 기업들이 이런저런 자료를 조합하여 기업의 ESG 성과에 관한 자료를 제공하고는 있으나, 기업들이 직접 보고하는 ESG 정보에 비하면 부족하다. GRI, SASB 등이 표준화되고 중요한(material)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으나, 아직까지는 이런 표준화된 기준을 강제화한 곳은 없다. 또 이 기준을 적용하여 정보를 제공하는 기업들도 이를 제3자 감사를 받고 제공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신뢰도 면에서 한계가 크다.

모든 투자 결정은 전적으로 데이터에 의존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투자 결정은 표준화된 정량적 데이터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앞에서 지적하였듯이 표준화, 신뢰도, 정량화 등 모든 관점에서 ESG 데이터는 심각한 한계를 안고 있다. 그러다 보니 데이터 제공 기업들도 이런 데이터들을 긁어모아 ESG 활동 평가 및 등급 평정에 사용하고 있으나, 제각기 서로 다른 고유의 방법을 사용하고 있고, 따라서 같은 기업의 ESG 등급이 평가 기관마다 큰 차이가 난다. 5개 주요 평가 기관의 ESG 등급 평가 결과를 사용하여 두 평가 기관의 결과 간에 상관계수를 구한 결과, 그 값이 0.42~0.73에 불과했다. 그에 비해 무디스와 S&P의 신용 등급 간의 상관계수는 0.986으로 매우 높았다. 어떤 자료를 쓰고 어떤 절차를 거치느냐에 대해 당연히 주관적 판단의 요소가 있기 때문에 두 기관의 평가 결과가 동일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신용 등급에 비해 ESG 등급은 평가 기관에 따라 워낙 편차가 크기 때문에, 투자자 입장에서 보면 이 자료를 근거로 투자 의사결정을 하기가 어렵다. 유사한 결과는 [그림 8]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S&P 500 기업을 대상으로 두 평가 기관(Sustainalytics, RobecoSAM)ESG 등급을 매긴 결과를 분포도로 표시하였다. 두 기관의 평가 결과가 근접할수록 대각선에 밀접하여 분포할 것인데, [그림 7]은 상당히 넓은 분포를 보이고 있다. 한 기관이 상위 20% 이상으로 평가한 기업이 다른 기관에서는 하위 40% 이하로 평가된 경우를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림8]이 보여주는 또 하나 사실은 시가총액이 큰 기업일수록 ESG 등급이 높다는 것이다. 대규모 기업일수록 많은 자원을 가지고 있어서 자기에게 유리한 ESG 데이터를 자주, 많이 공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CSR 부서가 규모도 크고 노하우도 많아서 ESG 평가 기관의 평가에 더 잘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ESG 등급에 기업규모 편향성이 있다는 비판은 이미 많이 제기된 바 있는데, 이처럼 ESG 등급이 기존의 재무 지표들에 영향을 받는다면, ESG 등급을 별도의 변수로 투자 모형에 반영하는 것이 왜곡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그림 8] ESG 등급 평가 기관의 S&P 500 기업 평가 결과

 

7.3 Aligning Time Frames

 

자산 운용자에 대한 평가 주기와 ESG 투자 성과가 실제로 나타나는 기간 간에는 괴리가 있어서 자산 운용자들이 긴 호흡을 가지고 ESG 투자를 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일반적으로 ESG 투자가 재무적 성과를 내는 데는 최소한 5~7년 정도의 기간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그림 9], [그림 10]의 결과를 종합해 보면 실제로 성과를 내는데 필요한 기간과 평가 기간 사이에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우선 [그림 9]에서 보듯이 투자 주기(investment horizon)에 있어서 자산 보유자와 자산 운용자들 간에 인식의 차이가 존재한다. 대부분의 자산 운용자(60%)들은 자신의 투자 주기가 5년 미만이라고 응답하였는데 비해 대부분의 자산 보유자(62%)들은 투자 주기가 5년 이상이라고 답하였다. 한편 자산 보유자의 47%, 자산 운용자의 43%ESG 투자가 제대로 성과를 내려면 5년 이상이 필요하다고 믿고 있는데 비해, 투자 성과(investment performance)를 평가하는 주기가 5년 이상이라고 답한 투자자들은 10~20%에 불과했다([그림 10]). 특히 37%의 자산 보유자들이 10년 이상의 투자 주기를 가지고 있다고 답하였는데도 불구하고, 10년 이상의 주기를 가지고 외부 운용자(2%), 내부 운용자(3%)를 평가하는 자산 운용자는 극소수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다 보니 자산 운용자들이 긴 호흡을 가지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자산 보유자의 37%10년 이상의 투자 주기를 가지고 있다고 응답한데 비해, 자산 운용자는 11%만이 10년 이상의 투자 주기를 가지고 있다.

 

 

                       [그림 9] 기관 투자자들의 투자 주기 분포 (설문조사 결과)

 

                       [그림 10] 기관 투자자들의 투자 성과 평가 주기 분포 (설문조사 결과)

 

 

8. 에필로그

 

지난 20~30년간 자본시장을 둘러싼 환경은 급격하게 바뀌었다. 기후변화 및 환경 문제와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은 과거처럼 기업 활동을 영위해서는 기업의 생존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인식을 갖게 했다. 여기에 국제 금융 위기는 금융 기업들의 탐욕과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를 인식시켜준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제 투자자와 기업들은, 단기적 이윤 추구를 장려하는 자본시장 시스템이 개선돼야 하며, 이해관계자들과 관련된 사회적 이슈들이 수동적으로 관리하거나 대응할 대상이 아니라 이해관계자들과 함께 가치를 창출해나가는 것이 자신들의 이익에 합치한다고 생각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난 것이다.

이에 투자자들은 ESG 이슈들을 잘 해결해 나가도록 기업을 장려하면서도 투자 수익률을 유지·상승시킬 방법을 고민하였고, 그러한 가능성을 보기 시작했다. 이제 많은 투자자들은 ESG 활동을 열심히 잘하는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이익이라고 믿기 시작했고, 그렇게 믿는 투자자들 숫자도 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직 ESG 투자가 대세(mainstream)라고 말하기에는 이르지만, 다양한 요인들이 ESG 투자의 확산을 지원하고 있다. 물론 장애요인과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들이 있지만, 세상에 장애요인 없는 일이 있으랴. 어찌 보면 이런 것들은 근본적이지는 않다. 그들이 이를 기꺼이 하려고만 하면...

 

그러나 ESG 투자의 미래에 대한 논의를 완결하려면 두 가지 질문이 더 필요하고, 아직 이에 대한 답변이 찾아지지는 않았다. (적어도 나는 아직 찾지 못했다.)

먼저, “그럼 아주 장기적으로 투자자(자본가)들의 몫, 즉 투자 수익률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물론 지금 ESG 투자를 주도하는 세력들은 ESG 투자 수익률이 그렇지 않았을 때의 현재투자 수익률보다 높게 나올 것을 기대하고 있고, 또 제대로 ESG 투자를 하면 그 정도의 수익률은 나온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우선 ESG 투자를 제대로 했을 때, 또는 ESG 투자를 하지 않았을 때 자본 수익률이 장기적으로 어떤 추세를 그릴지 예측하기 어렵다. 기업가치 극대화를 추구하는 투자자 입장에서 보면 결국 자본의 기회비용보다 투자 수익률이 더 높게 나오면 되는데, 자본의 기회비용=시장 수익률이다. 그런데 만약 모든기업이 ESG 투자를 활발하게 하면, 또한 이해관계자 가치를 위해 노력하면,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비용이 증가될 가능성이 크고, 그러면 ESG 투자 수익률과 시장 수익률 모두 하락할 가능성이 더 크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해 본다. 그러면 결국 투자자들이 너무 ESG 활동을 적극 지원하면 자신의 몫이 줄어든다는 불만이 나올 수 있고, 이것이 ESG 투자 활성화에 장애요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새로운 균형 상태에 도달했을 때, 시장 수익률과 ESG 투자 수익률이 모두 하락하였지만 ESG 수익률이 시장 수익률을 상회하거나 같은 수준이 될 가능성도 있다. 모든 기업이 ESG 활동을 한다는 것은 이것이 경영 활동의 일부가 되었다는 뜻이고, 그러면 모든 경영 활동이 그렇듯이 그걸 잘 하는 기업들은 수익성도 좋을 것이다.

다음으로, “ESG 투자가 얼마나 환경, 사회문제 해결에 기여할 것인가?” 이해관계자들이 느끼기에 비교적 만족스러운 수준에 이른다면 ESG 투자를 통한 자본주의 진화가 안착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또 다른 위기가 닥쳐올 것이다. 이는 투자자들이 얼마나 영리하게 특정 기업에 대한 지분율을 늘리거나 줄이느냐, 그리고 더 중요하게 어떻게 기업들의 ESG 활동을 체계적으로 독려하느냐에 달렸다. 이 과정에서 기관 투자자와 자산 운용사들은 상호작용을 통해서 기업들의 ESG 활동을 장려할 수 있고, 또 자산 운용사는 개인 투자자들을 끌어들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앞의 [그림 2]에서 보았듯이 킹 핀은 기관투자자이며, 자산운용사는 기관 투자자의 지침을 받아서 효과적으로 ESG 투자를 집행하는 것이다. BlackRock CEOLarry Fink가 지금은 ESG 투자의 화신처럼 되어 있으나, 사실은 금융위기를 불러온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초기에 개발해서 자신의 회사에 떼돈을 벌어준 사람이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었으니 여기에 빨리 적응하여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열심히 일한다. 항상 하는 이야기지만 나는 사람들의 선의를 믿지 않는다. 그들의 인센티브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지속될 수 있는 시스템인지만 고민한다.

 

결국엔 ESG 실적, 재무적 실적 둘 다를 내 놓아야 하는 부담을 안고, 외줄 타기는 시작되었다. 그런데 투자자들이 이렇게 하고 나섰다는 점에서 그들에게 응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Posted by 조 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