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롤로그

 

[ESG 시리즈] 블로그 포스팅은 각각의 글이 최대한 자기 완결적으로 작성되었으나, 또한 서로 연결되어 있다. 블로그 (1)ESG 투자를 개관하고 왜 ESG 투자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는지 살펴보았는데, 전체 시리즈의 overview 역할을 하고 있다.

블로그 (2)ESG 투자에 대해 본격적으로 다룬 첫 번째 글로서, ESG 투자의 What, Why, How에 대해서 자세히 논의하였다. 이 글에서는 ESG 투자를 투자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 투자 수익률 향상을 위해 사회적 가치 창출을 잘하는 기업에 투자하는 행동이라고 정의했다. 그런데 ESG 투자는 유사하긴 하지만 서로 다른 개념들과 역사적·이론적으로 연관을 맺고 있으며, 이 개념들은 다양한 학문 분야의 연구대상이 되어왔다. 한편, ESG 투자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본시장에서 투자자와 기업의 상호작용, 그리고 이들을 둘러싼 사회 환경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다. 이런 점에서 ESG 투자 및 연관된 개념들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블로그 (3)에서는 주로 사회학 관점에서 사회적 가치와 사회적 경제에 대해 살펴보았다. 먼저 다양한 기준과 의미로 쓰이는 사회적 가치의 개념을 정리하였는데, ESG 투자에서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한편 사회학에서는 종종 자본주의 체제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사회적 경제를 상정하는데, 이 글에서 살펴 본 바에 따르면, 그 개념이 지나치게 과격하여 현실성이 없거나, 아니면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 등을 통해 시장 경제를 제한적으로 보완하는 역할에 그치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블로그 (4), (5)에서는 각각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CSV(Creating Shared Value)에 대해 논의하였는데, 이들은 경영학 관점에서 기업이 사회적 가치 창출에 기여하면서도 이윤을 늘릴 수 있는 전략을 제시하는 데 목적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대다수 기업에게는 CSR/CSV 활동이 이윤 감소를 초래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더구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드라이브하는 세력이 투자자(주주)가 아니라 외부 이해관계자와 정부이기 때문에, 기업 CEO 입장에서는 이윤 감소를 겪으면서까지 CSR/CSV를 추구할 힘도, 그럴 인센티브도 없다는 것이 문제다. 이 접근 방법은 기업들이 열심히 ESG 활동을 하도록 움직일 힘은 궁극적으로 투자자로부터 나온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었다.

블로그 (3), (4), (5)ESG 투자와 관련된 이론들을 살펴보았지만, ESG 투자를 직접 다룬 것은 아니다. 이제 블로그 (6)은 다시 ESG 투자로 주제를 옮기기로 한다. 그런데 ESG 투자는 투자자에서 시작하여 기업 활동 변화를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자본시장 특성, 투자자와 경영자 인센티브, 그리고 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경제학적 접근이 필수적이다. 이번 블로그에서는 경제학 관점에서 ESG에 관한 몇몇 토픽을 살펴본다. 먼저, 경제학 시각에서 ESG 투자가 정당화되는 근거를 생각해본다. 지금까지 논의에 의하면, 전통적인 경제학 관점에서는 기업의 이윤 추구와 사회적 가치가 트레이드오프 관계에 있다고 보았는데, ESG 이론에 따르면 투자자들이 기업 경영자에게 사회적 가치 창출을 장려한다. 이처럼 얼핏 보기에 경제학과 ESG가 충돌이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2절에서 경제학 관점에서 ESG 투자가 정당화되는 이유를 설명한다. 3절에서는 기업이 스스로의 경제적 이익(이윤) 이외에 어떤 사회적 이익(가치)을 창출하는지 알아본다. 이어서 4절에서는 기업이 창출하는 사회적 가치, 더 나아가 ESG 활동성과 측정에 대해서 간단히 살펴본다. ESG 활동성과 측정은 곧바로 해당 기업의 ESG 경영 평가로 이어지며, 이 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투자자들이 경영 방향성에 대한 간여(engagement), CEO 임기 연장 여부 등을 결정하며, 또 해당 기업 주식 매수·매도 여부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2. 경제학 관점에서 본 ESG 투자의 가능성

 

2.1 경제학이 사회적 가치 및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던 시각

 

블로그 (4)에서 신고전파 경제학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가지고 있던 시각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본 바 있으며, 지금까지 경제학 관점에서 보면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 간에는 일반적으로 트레이드오프 관계에 있다고 반복적으로 설명했다.

경제학은 모든 경제주체는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합리성의 가정(rationality assumption)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전통적으로 경제학에서는 개인은 효용 극대화, 기업은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고, 이들이 이처럼 합리적으로 행동하면 기업-개인 간 시장거래를 통해 사회 후생(사회적 잉여) 극대화라는 사회적 목표는 저절로 달성한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므로 기업이 별도로 무슨 사회적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거나 하는 건 불편하게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다. 반드시 제도적으로 주어진 제약조건을 지켜야 하는 것 이외에는. 기업은 식 (1)에서 표시하는 바와 같이 자신에게 주어진 제약 조건을 충족시키면서 이윤 극대화를 추구한다. 여기서 제약조건은 E, S, G로 표현되는 사회문제 해결(사회적 가치)을 의미한다. 이 식은 이윤 극대화와 사회적 가치 간에 trade-off 관계가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maximize Profit(Neoclassical)                                                                                (1)

                          subject to E(탄소배출, 오염물질...)

                                           S(산업안전, 최저임금, 장애인 고용...)

                                           G(지배구조 규제, 대리인 비용)

 

나아가, 법으로 강제된 것 이외에 사회적 책임이니 뭐니 하는 것은 단순히 해당 기업의 이윤을 감소시키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시장에서 자원배분을 왜곡하고 따라서 그만큼 경제 전체의 효율성을 저해하는 행동으로 간주했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하면, 사회적 가치를 추구함으로써 이윤을 증가시키는 방법이 있다는 전략적 CSR/CSV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질 수밖에 없다. 경제학자들은 아마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을 게다. “사회적 가치를 창출함으로써 이윤을 늘리는 좋은 방법이 있다고? 그럼 기업이 어련히 알아서 그 방법을 찾아서 이윤 극대화를 할 텐데, 웬 걱정이지? 그러니까 공유가지 창출이니 뭐니 이런 소리하지 말라고요...”

특히 프리드먼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란 단어 속에 스며든 기업 의사결정의 정치화를 강하게 반대했고, 그만큼은 아닐지라도 CSR 활동이란 이름으로 CEO가 자기 멋대로 기업 자원을 배분하는 것을 마치 정부가 세금 떼어가는 것처럼 이윤을 축내는 대리인 비용으로 경계했다.

 

그런데 말이다. ESG 투자 이론에 따르면 주주가 제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라고 CEO겁박한단다. 그러니 얼핏 생각하면 이는 경제학 이론에는 전혀 맞지 않는 황당한 주장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ESG 투자는 경제학 관점에서 깔끔하게 설명이 가능하다.

 

2.2 경제학으로 설명하는 ESG 투자 근거

 

이제 몇 가지 측면에서 경제학 관점에서 왜 ESG 투자가 말이 되는 소리인지 생각해보기로 한다. 이 중에 어떤 것은 최근 상황 변화를 반영한 측면이 있고, 또 어떤 것은 원래 경제학 이론에 합치되는 것이지만 ESG 투자와 관련하여 새롭게 강조하게 될 부분이다.

 

(1) 이윤 극대화 가정이 단기 이윤 극대화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학에서 기업이 이윤 극대화를 추구한다고 가정할 때, 이는 곧 기업가치 (또는 주주가치) 극대화를 의미한다. 왜냐하면 여기서 이윤은 너무나도 당연히, 올 한 해만의 이윤이 아니라 이 기업이 미래에 벌어들일 걸로 예상되는 모든 이윤을 현재 가치로 환산한 것을 합한 금액을 의미하며, 이것이 곧 기업가치의 정의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설사 단기적인 이윤이 줄어들더라도 장기적으로 더 많은 이윤을 가져다 줄 행동을 하면, 이는 주가에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이처럼 경제학에서는 원래 이윤 극대화라는 말은 곧 장기적인 이윤 극대화를 뜻하는 것이다. 이게 사실 그렇게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다. 예컨대 아마존은 1994년 회사 설립 이후 20년 이상 지난 이후에야 조금씩 순이익을 내기 시작했지만, 투자자들은 아마존의 놀라운 성장률이 먼 훗날 큰 이윤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아마존 주식을 사 모았고, 이는 엄청나게 높은 기업가치로 이어졌다. 이처럼 유망한 스타트업이나 테크 기업들이 그들의 이익규모에 비해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을 수준의 기업가치를 유지하는 경우를 보는데, 이는 자본시장이 기업가치(=주주가치)와 단기 이윤을 별개의 항목으로 평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 왜 자본시장이나 경영자들이 단기 이윤에만 매달리는 것처럼 보였을까? 사실 이들이 단기 이윤에만 매달린 건 아니고, 단기 이윤이 곧 미래 장기 이윤의 척도(barometer)도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즉 한 기업의 비즈니스 환경이 미래에 별로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가정하면, 매년 비슷한 수준의 (높은) 이윤을 또박또박 실현하는 것이 최고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는 자본시장과 경영자들이 단기 이윤의 추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안정적인 비즈니스 환경을 기대하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기 때문에 단기 이윤뿐만 아니라 장기 이윤 전망에 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커졌다. 특히 최근 기후변화에 따른 환경 리스크 때문에 많은 산업의 장기 이윤이 어떤 영향을 받을지 예측이 잘 안 되고, 많은 경우 매우 나빠질 것이라고 생각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이는 화석 연료를 생산하거나 많이 소비하는 산업에 특히 적용되는 이야기지만, 기후변화 리스크로부터 자유로운 기업은 하나도 없다. 따라서 당장에는 단기적 이윤 감소를 겪더라도 탄소 배출량 감소 등을 위한 장기적 투자를 하지 않으면 파산까지를 포함해 더 나쁜 미래가 오리라는 위기감이 생기면서, 의사결정 및 이윤 흐름에서 평가주기(time horizon)를 좀 더 명시적으로 고려하게 되었다. 이처럼 장기적인 호흡을 요하는 ESG 투자가 기업가치 극대화와 충돌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물론, 당초부터 미래 할인율이 높은 투자자들, 즉 장기 이윤에 관심이 없는 투자자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는 있으나, 단기 이윤이 곧 장기 이윤의 척도라는 관점에서, 또는 할인율을 감안하면 단기 이윤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 때문에, 단기 이윤의 변동이 기업가치에 바로 큰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이런 기업가치 변화 가능성에 민감한, 애초에 단기적 투자수익을 목표로 하는 투자자들은 단기 이윤 변화에 따라 예상되는 주식 변동에 좀 더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고, 또 이들로부터 압박을 받는 CEO들은 단기 영업 실적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이러한 단기 실적주의(myopia)는 긴 호흡을 요구하는 ESG 투자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은 분명하다.

 

(2) 장기적 투자 실적을 중시하는 투자자 증가 - investment horizon 증가

블로그 (2)ESG 투자를 촉진하는 요인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연금·보험 등 대형 기관 투자자들은 장기간에 걸쳐 연금 또는 보험금을 지급해야 하기 때문에 일반 투자자에 비해 훨씬 장기적인 투자수익을 중요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연기금이 자본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그만큼 전체적으로 투자주기(investment horizon)는 길어지고 미래 이윤에 대한 할인율은 낮아지게 될 것이다.

“universal owner”의 존재 또한 투자주기를 길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블로그 (2)에서 설명하였듯이, universal owner란 대규모 자산운용사 등 대형 기관투자자들처럼 운용자산 규모가 워낙 커서 특정 섹터나 기업이 아니라 전체 자본시장에 걸쳐 장기적으로 주식을 보유한 투자자를 일컫는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universal owner들은 분산투자를 통해서 시스템 리스크(system-level risk)를 줄일 수 없으며, 국민경제 전체의 기회와 위기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그러니 그들은 지구가 멸망하도록 방관할 수는 없는 입장이고, 따라서 기후변화 대응 투자와 같은 장기적 관점의 투자를 지지하는 것이다.

 

(3) 투자자의 효용함수(선호) 변화

지금까지 기업은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는 것으로 가정했지만, 주주 관점에서 보면 그들은 각각 효용 극대화를 추구하는 경제 주체이다. 따라서 이들이 투자를 통해서 단순히 기업가치 극대화만을 추구한다고 가정할 이유가 없으며,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면 각자의 효용(후생)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투자 결정을 할 것이다. 그런데 이때 투자자들의 효용 함수에 사회 후생, 또는 사회적 가치가 중요한 요인으로 포함되어 있으면, 이를 자신들의 투자 결정에 반영하려고 할 것이다.

물론 이런 주장이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효용 극대화라는 관점에서 볼 때, 투자자(소비자)는 이기적인 존재로 가정하는데, 사회적 가치 추구가 그들의 효용을 증가시킨다는 건 얼핏 생각하면 납득이 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개인의 효용 함수는 법제도, 도덕, 친척·친지·동료들의 평가·압력·기대, 교육의 결과 등을 반영하여 형성된다. 따라서 이기적 행동은 이런 다양한 사회적 요인들, 특히 이타적 행동을 장려하거나 지도하는 요인들에 의해서 제약을 받으며, 그러한 제약, 지도의 범위 내에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 사회화 과정을 통해서 이타적 행동을 하는 것이 자신의 효용 극대화에도 도움이 되거나, 최소한 무차별하게 받아들여지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효용함수는 애덤 스미스의 이론에서 어긋남이 없다. 흔히 애덤 스미스는 자기이익을 추구하는 인간 본성만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는 도덕감정론에서 동감(sympathy)”의 중요성도 강조하고 있다.

 

          “인간은 이기적이라고 간주되기도 하지만 인간의 본성 가운데는 다른 사람의 행운에 관심을 가지며 그들의 행복을 자신에게 필요한 것으로 여길 수 있게 하는 원리가 분명히 존재한다. 단지 자신이 다른 사람의 즐거움을 보는 것 외에는 아무런 유익을 얻지 못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본성은 결코 덕스럽거나 고상한 사람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이다.”

 

애덤 스미스에 따르면 경제발전은 동감(sympathy)의 범위 내에서 자기이익을 추구하는 인간행위의 결과다. 자기이익을 추구하는 동인 때문에 경제가 발전하지만, 이것이 과도하지 않도록 내·외적인 제약을 가하는 동감의 범위 내에서만 추구되기 때문에 사회가 무너질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다.

그럼 이 경우에 기업의 목적함수는 어떻게 될까? 몇몇 학자들은, 주주들이 기업 활동에 대한 의사결정 권한을 가지고 있으므로, 기업들이 주주가치(=이윤) 극대화가 아니라 주주후생 극대화를 위해서 활동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합리성 가정에서 볼 때 이 주장은 타당하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주주총회, 또는 주총의 권한을 위임받은 이사회에서 개별 의제들에 대해서 투표를 할 때, 주주들이 모두 동일한 선호 체계를 가지고 있다면 그 방향으로 결정을 내릴 수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주주들이 다양한 선호 차이를 가지고 있을 것이고, 이 상황에서는 주주 전체의 후생함수를 도출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비용(contracting costs)이 들 것이다. 따라서 실제로는 주주가치 극대화가 주주후생 극대화보다 합의(계약)를 도출하는데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견해가 더 설득력 있다. , 단기적 vs. 장기적 이윤, 또는 경제적 vs. 사회적 가치 간의 선택에 있어 기업가치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럼 어떤 게 기업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인가? CEO가 기업가치에 도움 되는 행동을 하면 자본시장이 이에 긍정적으로 반응하여 주가는 바로 오른다. 그 회사를 긍정적으로 본 투자자들이 매수에 나설 테니까. 이는 ESG에서도 마찬가지다. 기업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material) ESG 활동이 무엇인지 판단하는 능력과 정보가 늘어나면서 기업들을 평가하는 기준이 보다 분명해지고, ESG 활동을 잘하는 기업의 주식을 골라 살 테니까 주가가 오를 것이다. 이처럼 투자자들의 선호가 ESG 활동 쪽으로 바뀌면 자연스럽게 자본시장을 통해서 기업의 ESG 경영을 독려할 수 있게 된다.

투자자들의 선호가 실제로 어떻게 투자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들도 있는데, 예컨대 투자주기가 긴 투자자들이 ESG 활동을 잘 하는 기업들에 더 많이 투자하고, ESG 활동이 좋은 기업들은 설사 영업 실적이 안 좋게 나타나더라도 투자자들이 주식을 덜 매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투자자 선호가 ESG를 지지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면 이는 분명히 ESG 투자를 촉진하는 요인이 될 것인데, 최근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ESG 활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밀레니얼 세대들의 투자액 증가가 ESG 투자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4) 기업은 이윤을 늘리기 위해 이해관계자들을 쥐어짜는가?

지난 수십 년간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경제학의 판단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글은 Friedman1970The New York Times Magazine에 기고한 “The Social Responsibility of Business is to Increase its Profits”라고 생각한다. 글의 제목만 보면 기업은 수단 방법을 안 가리고 이윤 증대만 하면 된다는 주장으로 보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프리드먼은 기업들이 법률에 규정되고 윤리적 관습으로 체화된 사회 규칙을 준수한다는 전제를 분명히 하고 있다. , 정치적인 합의 절차를 거쳐서 도입된 정부 규제는 당연히 지키는 범위 내에서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는 기업을 상정하였다. 또한 프리드먼은 기업이 사회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는 것이 그 기업의 장기적 이익에도 합치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조그마한 지역사회에 큰 대기업이 존재하는 경우에, 그 지역사회에 여러 가지 기여를 하는 것이 좋은 노동자를 채용하고, 그들이 파업이나 태업 등 행동을 줄일 수 있는 등 바람직한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만약에 프리드먼이 살아서 2019Business Roundtable에서 발표한 “Statement on the Purpose of a Corporation”에서 강조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를 들었다면 그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나는 그가 여기에 담긴 목표에 반대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미국의 주요 기업 CEO들은 Business Roundtable 발표문에서 고객에게 가치를 전달하고, 종업원에게 투자하며, 납품기업을 정당하고 윤리적으로 다루며, 기업이 속한 지역사회를 지원하면서, 동시에 주주들에게 장기적 가치를 창출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그들은 이해관계자 가치를 손상하면 기업의 장기적 생존이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장기적으로 주주가치를 창출하는 범위 내에서 이해관계자 가치를 챙기겠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이는 프리드먼의 메시지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 기업이 이윤 극대화를 위해 열심히 일하면 (생산 및 배분적) 효율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생산 활동에 참여하고 제품을 구매한 이해관계자들의 후생이 극대화되므로, 이것이 기업이 사회에 기여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프리드먼은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란 명분으로 CEO가 주주 몫을 다른 용도로 배분한다면, 이건 정부가 마음대로 세금을 징수하는 것과 똑같으며, 따라서 이해관계자 가치 추구가 다른 이해관계자인 주주의 몫을 희생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어쨌거나 기업들이 가능하면 납품가 깎고 임금 덜 주려고 하는 등 나쁜 짓을 하는 게 현실 아니냐고 반박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경쟁 환경에서 비용 최소화를 통해 사회 후생을 극대화하는 것이 자본주의 경제의 특징이다. 이 사고의 프레임에서는 일할 기회, 납품할 기회가 주어진 것이 가장 큰 후생으로 간주된다. 더 많이 나누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경제체제에서는 자본주의 체제만큼 효율성이 나오지 못해서 아예 일할 기회, 납품할 기회를 갖지 못하는 문제가 생긴다. 세상에 완벽한 제도가 없으니 그중 덜 나쁜 제도를 선택하고 그 제도의 단점을 계속 보완하는 것이 옳은 방향 아닐까?)

 

(5) ESG 투자의 인센티브 합치성

경제학에서는 어떤 제도가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가?”라는 질문보다는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아무리 어떻게 작동해야 한다고 주장하더라도 실제로 그렇게 작동하지 않으면 그 주장이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ESG 투자가 바람직한 제도인지 묻기 보다는 ESG 투자가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지를 따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 어떤 제도가 지속적으로 유지되려면 참여자들 입장에서 그 제도가 이익이 되고 그렇기 때문에 그 제도 유지를 위해서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 제도의 인센티브 합치성(incentive compatibility)이 중요하다.

블로그 (2)에서 ESG 투자자가 참여자들의 인센티브에 합치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이 글에서 지금까지 살펴 본 내용들, 즉 기관 투자자들의 투자주기가 길어진다거나, 개인 투자자들이 ESG 투자에 대해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거나 하는 내용들은 결국 투자자들이 자발적으로 ESG 투자를 늘릴 인센티브가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기업 경영자 입장에서도 주주들이 단기적 실적에 연연하지 않고 장기적 이윤에 도움이 될 ESG 활동을 하라고 하는데 이를 마다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투자자나 경영자들의 이러한 변화가 기후변화, 사회적 인식 변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마지못해하는 것이지, “자발적이지는 않다는 반박이 있을 수도 있다. 이런 외부 요인들이 자산 보유자와 운용자의 태도 변화를 촉발하였다는 건 분명 맞는 말이다. 그러나 어느 시기건 외부 요인 변화는 항상 있어 왔고, 급격한 변화를 빨리 받아들이고 신속하게 대응하는 조직이나 사람은 살아남고, 끝까지 이에 저항하는 이들은 멸망의 길을 걸었다. 새로운 환경에 걸맞게 자신의 선호 함수를 바꾸고 그에 걸맞은 행동방식을 찾아서 실행에 옮기는 조직이라면, 이들은 마지못해 행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센티브에 합치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좋았던시절을 못 잊어하며 , 옛날이여나 외치는 이들의 행동을 인센티브에 더 합치한다고 볼 이유는 없다.

어떤 제도든지 항상 그 제도를 악용하고 남을 속여서 자신의 이익을 더 늘리려고 하는 행동은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아직 ESG 투자가 참여자들의 인센티브 설계 면에서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업이, 또는 투자자들은 이렇게, 저렇게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접근 방식보다는, 투자자들이 이렇게 행동할 인센티브가 있다라는 ESG 투자가 좀 더 지속가능할 것으로 보이는 건 분명하다.

 

 

3. 기업이 창출하는 사회적 가치(+)와 사회적 비용(-)

 

3.1 기업을 둘러싼 이해관계자(기업 생태계)

 

기업은 여러 이해관계자와 상호 작용하고 있다. 시장 내부에서는 가치사슬 구성요소들과 협력하여 상품을 생산하여 소비자에게 판매하고, 시장 외부에서는 기업을 둘러싼 사회 공동체, 정부 등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림 1]은 기업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들과 기업 간의 상호 작용을 간단히 정리한 것이다.

먼저 시장 내부에서 기업의 생산 활동에 참여하는 가치사슬 구성요소들과의 상호작용을 정리해보자. 근로자들은 고용계약을 맺어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다. 근로자 이외에도 생산 과정에 여러 이해관계자들이 다양한 자원을 제공한다. , 기업은 토지·건물(지주), 대출 및 채권 발행을 통한 자금(금융기관 및 채권자), 중간재(납품 기업) 등을 조달하고 이에 대한 대가로 각각 지대·임차료, 이자, 물품 대금 등을 지급한다. 끝으로 생산된 제품은 소비자에게 판매된다. 한편 기업의 주주들은 자본 출자 금액에 비례하여 주식을 보유하며, 주주총회 및 이사회를 통해서 경영자에 대한 임면권과 주요 의사결정권을 갖는다. 기업의 생산 활동에 참여한 다른 이해관계자들에게는 원칙적으로 사전에 약속한 금액(임금, 지대·임차료, 이자, 물품 대금)을 지급하지만(fixed payoff), 주주들은 매출액에서 이들 이해관계자들에게 지불할 금액을 다 지불하고 남는 금액(residual)을 이윤으로 가져간다. 이처럼 다른 이해관계자들과는 달리 주주는 회사 경영활동에 따른 위험을 모두 부담한다는 점에서 residual risk bearer 또는 residual claimant라고 불린다. (물론 다른 이해관계자들도 파산 같은 심각한 위험에 처하면 약속한 금액을 받지 못할 수 있고, 또 계약에 따라 이윤이 많이 발생할 경우에는 그 중 일부를 받을 수 있는 upside potential도 있다.) 주주들이 이러한 위험을 부담하기 때문에 기업의 중요한 의사결정과 관련한 권한을 갖게 된다.

 

                          [그림 1] 기업 생태계와 기업이 창출하는 사회적 가치·비용

 

 

기업-이해관계자 간의 상호 작용 규칙은 기본적으로 계약에 의해 결정되는데, 소유주(entrepreneur)가 존재하는 고전적 기업의 경우에는 이 소유주가 다른 모든 이해관계자들과 1:1로 계약을 맺는 형태가 된다. 그러나 오늘날처럼 주식소유가 완전히 분산된 상태에서는 주주가 기업을 소유(own)하지도, 경영(control)하지도 않는다. 주주도 다른 이해관계자처럼 기업과 계약을 맺지만, 경영 결과에 대한 위험 부담 및 주요 의사결정권 보유가 계약의 주된 내용이라는 점이 다른 이해관계자들과 다르다. 주식 소유권이 분산된 현대 기업에서는 주주총회에서 선임된 CEO가 기업을 대표하여 모든 이해당사자와 계약을 체결하고, 계약 준수 여부를 모니터링하는 주체가 된다. 오늘날 기업이론에서는 대체로 기업의 본질을 이처럼 수많은 계약의 집합체(nexus of contracts)로 보고 있다.

대부분의 기업 활동은 이처럼 시장에서의 자발적 계약과 거래를 통해서 이루어지지만, 시장에서의 거래가 아닌 방법으로도 이해관계자들과 상호 작용하고 있다. 이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외부효과(external effects)이다. 외부효과는 한 사람의 행동이 시장 기구를 통하지 않고 제3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말하는데, 부정적 외부효과의 대표적인 예로는 공장 매연을 들 수 있다. 공장은 매연을 내뿜지만 기업이 시장에서 이에 대한 대가를 지불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매연을 자발적으로 줄이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이러면 기업의 경제적 가치는 극대화될지라도 환경 훼손이라는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 공장 매연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이 피해를 시장을 통해 보상받을 수 없기 때문에, 개별적 또는 집단적으로 해당 기업과 협상을 통해서 해결하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양자가 만족할만한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시간적 비용이 많이 들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아예 불가능하다. 따라서 부정적 외부효과가 발생하는 경우 일반적으로 정부가 개입하여 외부효과를 발생한 주체에 규제를 가하거나 세금을 부과함으로써 해당 기업의 생산 과정에 사회적 비용을 내부화할 수 있다. 한편 한 기업이 혁신을 통해 개발한 기술이나 과학적 지식이 다른 기업들에게도 무료로 공유되어 이들 기업의 혁신에 기여하였다면, 이는 긍정적 외부효과를 통한 사회적 가치 창출에 해당한다.

한편, 기업이 정부에 내는 세금도 시장 외부의 거래로 볼 수 있지만, 기업의 시장 활동을 원활하게 해주는 정부 서비스에 대한 대가로 보아 시장 내부 거래로 해석할 여지도 있겠다.

 

3.2 기업이 창출하는 사회적 가치 및 비용: 완전경쟁 상황

 

지금까지의 논의를 바탕으로 기업이 창출하는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는데, 논의 전개를 위해서 먼저 완전경쟁 시장에서의 결과를 보고 다음 절에서 일반적인 경우로 확대한다.

완전경쟁 시장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조건을 만족하는 시장을 말한다. 판매자와 구매자가 다수 존재하여 개별 시장 참가자들은 가격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가격을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인다. (price taker) 시장 진입과 퇴출이 자유롭고 추가적인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다. 시장 참가자들은 모든 정보를 무료로 동일하게 가지고 있다. 시장에서 판매되는 제품들은 모두 동일하다.

 

                                          [그림 2] 완전경쟁 시장에서의 시장 균형

 

 

완전경쟁 시장에서 다수의 수요자와 공급자가 만나서 거래를 하고 균형 상태에 도달한 상황을 묘사한 것이 [그림 2]이다. 이 그림에서 수요곡선(D)과 공급곡선(S)이 교차하는 것에서 균형가격(Pc)과 균형 거래량(Qc)이 결정된다. 이때 공급자(기업)Pc=AC(평균 비용)인 상황에서 판매하고 있으니 경제적 이윤이 0이다. 그런데 가격과 평균비용이 같다는 것의 의미는 이 생산 활동에 참여한, 주주를 포함한 모든 이해관계자들에게 정당한대가(비용)를 지불했고 그 비용의 합이 곧 가격과 같다는 뜻이다. 여기서 정당한 비용은 기회비용을 의미하는데, 간단히 말해서 근로자에게는 다른 곳에서 받을 만큼의 임금을 지불했고, 주주들에게도 그들이 제공한 자본에 대한 적정 수익률(=risk-free interest rate + risk premium)을 지불했다는 의미다. 그랬을 때 경제적 이윤이 0이라는 뜻은 초과이윤(EVA, Economic Value-Added)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초과이윤이란 일정한 독점력을 가진 기업에게 돌아가는 대가라는 점을 감안하면 경쟁시장의 기업들에게 초과이윤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건 당연하다. 흔히 기업이 창출한 순이익 또는 이윤을 기업 자신을 위한 경제 활동 결과로 보아 경제적 가치라고 부른다. 그런데 경제학적으로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경쟁시장에서의 기업이 창출한 경제적 가치는 0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국민소득 계정에서 자본의 몫으로 돌아간 이윤을 부가가치(=국민소득)에 포함하기 때문에 순이익을 경제적 가치라고 정의해도 무방하다.

 

그러면 기업들이 이 경쟁시장에서 창출한 사회적 가치는 무엇인가? 경제적 가치는 기업 자신을 위한 경제 활동 결과인데 비해, 나머지는 사회의 이해관계자들에게 제공되는 것이기 때문에 사회적 가치라고 부를 수 있다. 그 중에서 첫 번째 항목은 기업이 생산요소 제공자(supplier)에게 대가로 지급하는 임금, 이자, 지대이다. 이들을 이윤, 세금과 합하면 국민소득(=부가가치) 총액이 된다. 따라서 주주 이외의 시장 참여자에게 지급한 대가는 국민경제에 기여한 사회적 가치로 볼 수 있다.

한편 소비자들은 시장가격을 지불하고 상품을 구매하였지만, 실제로 자신들이 느끼는 효용의 금전적 가치는 대체로 지불금액보다 큰 편인데, 효용과 지불금액의 차이를 소비자 잉여(consumer surplus)라고 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소비자 잉여는 소비자가 해당 상품에 대해 지불할 용의가 있는 금액(willingness to pay, WTP)에서 실제로 지불한 금액(가격, P)을 뺀 차액으로 정의된다. 예컨대 어떤 소비자가 해당 상품에 대해 300원을 지불할 용의가 있는데 실제로는 200원을 지불하였다면, 소비자 잉여는 100원에 해당하고 이 100원이 소비자가 누리게 된 추가적인 가치이다. 이 가치는 시장 거래를 기반으로 생겨난 가치이긴 하지만, 실제로 시장에서 주고받는 금액이 아니기 때문에 시장 거래액으로 잡히지는 않는다. 그런데 가격이 200원인 이 상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은 WTP200원 이상인 사람들이고, WTP200원 이하인 사람들은 구매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이 상품 구매자 중에서 WTP가 가장 낮은 사람은 200원의 가치가 있다고 느끼고 200원을 지불하였다. , 이 구매 활동에서 200원의 효용을 누렸지만 200원의 비용을 지불했기 때문에 추가적으로 창출된 가치는 0이다. [그림 2]에서 회색으로 칠해진 삼각형이 이 시장에서 발생한 소비자 잉여의 크기를 나타낸다. 소비자 잉여는 사회적 잉여(social surplus) 또는 사회 후생(social welfare)라고 부르는데, 이 명칭에서 보듯이 소비자 잉여는 기업이 생산 활동을 통해 소비자 후생에 기여한 사회적 가치이다.

 

3.3 기업이 창출하는 사회적 가치 및 비용: 보다 현실적인 상황

 

완전경쟁 시장의 가정을 완화하여 보다 현실적인 상황에서 기업이 창출하는 사회적 가치와 비용을 따져보려면 두 가지 변화를 고려해야 한다.

 

(1) 혁신과 그에 따른 독점

완전경쟁에서는 혁신의 가능성이 원천적으로 배제되어 있다. 혁신이란 남들보다 앞서 차별적인 제품을 만들고, 많은 경우 특허를 통해 다른 기업이 혁신의 결과를 공유하는 것을 차단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완전경쟁에서는 모든 정보가 무료로 공유되고, 또 모든 제품이 동일하다고 가정하고 있기 때문에 혁신의 결과물도 모든 기업들이 즉시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혁신을 이룬 기업이나 이를 모방한 기업이나 모두 똑같은 수준의 이윤(= 경제적 이윤 0)을 갖게 된다. 이렇게 되면 큰 이윤을 기대하고 열심히 혁신 활동을 하려던 기업가의 혁신 인센티브가 없어진다. 그런 점에서 완전경쟁 시장과 혁신은 양립할 수 없는 개념이다. 혁신을 경제학 영역으로 끌어들인 최초의 경제학자 슘페터는, 완전경쟁 시장은 매 순간마다 정태적인 효율성은 달성했을지라도 장기적인 성장을 가져다 줄 동태적 효율성과는 전혀 양립할 수 없다고 비판한다. 이런 점에서 그는 완전경쟁 시장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열등한 시스템이며, 이상적인 효율성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질 이유가 없다고 지적한다.

 

          “Entrepreneurs bring an invention into commercial innovation. Then, entrepreneurs are rewarded with huge profit. It is the profit for being first. If imitation by competitors is immediately possible, then entrepreneurial profit does not exist and there is no incentive to engage in innovative activity. There is a basic incompatibility between entrepreneurial activity and perfect competition. In the conflict between entrepreneurial activity and perfect competition, the latter should be sacrificed.”

                        - Joseph Schumpeter, “The Theory of Economic Development,” 1934

 

          “A system that, at every point in time, fully utilizes its possibilities to its best advantage may yet in the long run be inferior to a system that does so at no given point in time, because the latter’s failure to do so may be a condition for the long-run performance

It is not sufficient to argue that the large-scale establishment must be accepted as a necessary evil inseparable from the economic progress. What we have got to accept is that it has come to be the most powerful engine of that progress and, in particular, of the long-run expansion of total output. In this respect, perfect competition is not only impossible, but also inferior, and has no title to being set up as a model of ideal efficiency.”

                        - Joseph Schumpeter, “Capitalism, Socialism, and Democracy,” 1942

 

이처럼 혁신은 거시적으로는 경제발전(=국민소득 성장)을 가져다주고, 소비자들에게는 혁신을 통해서 더 좋은 제품을 더 싸게 공급함으로써 소비자 잉여를 증가시켜준다. 혁신기업은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고 그 대가로 창출한 가치의 일부를 경제적 이윤 형태로 공유하는 것이다.

그런데 일반인들의 정서는 혁신에 대해서는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도, 독점 기업의 초과 이윤에 대해서는 독점 기업이 소비자 and/or 다른 이해관계자의 몫을 빼앗은 것으로 보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러나 혁신과 경제적 이윤은 하나의 활동에 따른 결과물을 양쪽에서 바라 본 것이다. 둘 다를 포기하거나 둘 다를 받아들여야지, 이 중에서 하나만을 받아들이는 그런 묘수는 없다.

 

(2) 외부효과와 사회적 가치·비용

외부효과에 대해서는 이미 3.1에서 설명한 바 있다. 아예 시장이 존재하지 않아서 거래를 통해 해결할 수 없는 대표적 사회적 문제가 환경오염 문제라면, 불완전 정보나 비대칭 정보로 말미암은 소비자 보호 문제는 완전경쟁 조건이 달성되지 않아서 발생하는 문제이다. 이때 탄소배출량을 과거에 비해 줄여나가거나 소비자에게 더 많은 정보 제공을 통해 소비자 피해를 줄이는 것도 사회적 가치 창출로 볼 수 있다.

그런데 흔히 외부효과로 말미암아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면 무조건 정부가 개입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꼭 그럴 필요는 없다. 사실 정도 차이는 있지만 외부효과가 전혀 없는 경제활동은 드물다. 예컨대 가당(加糖) 음료를 마시는 것은 전적으로 개인적 행동으로 생각되지만 당뇨병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이런 음료를 마시면 사회 전체의 의료비 부담 증가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외부효과가 있다. 그럼 이런 경우에도 정부가 개입해서 공복 혈당 수치가 일정 수준을 넘는 사람에게는 가당 음료를 팔지 못하게 해야 하는가? 아니면 모든 음료에 들어가는 당분 량을 정부가 규제해야 할까? 아마 이런 정부 개입을 옹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런 문제는 근본적으로는 개인적인 판단 영역으로 남기고, 적절한 정보 제공 및 사회적 캠페인을 통해서 개인적인 선택을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적지 않은 환경 및 사회 문제의 경우에 정부 개입보다는 소비자 및 투자자의 선호 함수를 바꾸는 적극적인 사회 운동이 더 바람직할 수 있다. ESG 성과를 올리는 데 가능하면 시장을 활용하는 것이 좋다는 관점에서 이런 부분에 대한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할 듯싶다.

 

(3) 종합: 기업이 창출하는 경제적 & 사회적 가치

지금까지 이야기를 종합하여 기업이 창출하는 가치를 정리, 분류하면 [1]과 같다. 이 표는 블로그 (3)에서 사회적 가치의 분류에 대해 살펴보면서 이미 제시했던 표이다. 다시 한 번 정리하면, 이윤은 기업이 자신을 위해서 창출한 경제적 가치로 분류된다. 그리고 사회적 가치는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소비자들이 누리는 사회후생, 즉 소비자 잉여, 기업 활동에 참여한 이해당사자들과 함께 창출한 부가가치 (임금, 이자, 지대, 세금), 시장을 통하지 않는 활동을 통해 창출되는 사회적 가치가 그것이다.

, 번 항목의 정의와 분류는 명확한데 비해, 번은 정의, 범위, 분류 모두 그리 분명하지 않다. 여기에는 긍정적 외부효과를 통해서 창출된 사회적 가치(e.g., 기술혁신의 파급효과), 또는 부정적 외부효과 때문에 발생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과정에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경우(e.g., 탄소 배출량 축소)가 포함될 것이다. 또 다른 분류로는 기업 활동을 통해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경우(e.g., 장애인 고용 확대), 기업 활동 이외의 공헌 활동(e.g., 학교 설립, 사회공헌 기부금)으로 나눌 수 있다. 이 활동들 중 어떤 것은 기업이 자발적으로 실행하는 것도 있을 테고, 또 정부 규제를 충족하기 위해서 하는 것도 있겠지만, 어떻게 시작된 것이건 사회적 필요를 충족한다는 점에서 여기서는 이 구분이 의미가 없다.

 

                        [1] 기업이 창출하는 경제적 & 사회적 가치

 

 

4. 기업이 창출한 사회적 가치 창출(ESG 활동성과)의 측정

 

4.1 ESG 활동성과를 측정하는가?

 

앞 절에서 큰 그림을 그리는 차원에서 기업이 창출한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가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우리가 기업이 창출한 사회적 가치에 주목하는 이유는 단지 기업이 얼마나 사회적 기여를 많이 했는지 보기 위한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그 기업이 이를 통해 자신의 경쟁력을 높이고 더 나아가 이윤 창출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 알고 싶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는 화석연료를 많이 사용하는 기업이 1천억 원을 들여 장학재단에 설립하는 것은 칭찬할 일이긴 하나, 같은 금액을 들여 탄소배출 감축 시설을 설치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일이다. 이처럼 사회적 가치 또는 ESG 활동성과가 어떤 항목에서 얼마나 발생했는지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그 기업의 성과를 측정, 평가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특히 ESG 투자의 시작은 기업의 ESG 활동 평가에서 시작한다. 누가 어떤 분야에서 잘하는지, 또는 못하는지를 알아야 해당 기업에 대한 투자 여부를 결정할 수 있고, 또 그 기업의 ESG 활동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engagement)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개별 기업 입장에서도, “측정할 수 있으면 관리할 수 있다. (What gets measured gets managed.)”라는 말처럼, “측정 관리(극대화, 최소화 등) 최종 목표 달성(사회적 가치 창출 및 기업가치 극대화)”의 과정을 통해서 기업 활동을 효율화할 수 있다.

물론 사회적 가치는 많은 경우 정성적이고 주관적이기 때문에, 이를 화폐가치로 환산하거나 정량화된 지표로 측정하는 것은 어렵고 자의적이라고 폄하하는 시각이 있다. 특히 이런 자의적 결과를 바탕으로 기업 성과를 평가하는 것은 무의미하거나 위험하다는 지적도 있다. 분명 일리 있는 지적이다. 그러나 재무제표가 표준화되면서 기업의 재무실적 측정과 기업 가치 평가가 용이해졌다. 그리고 재무제표는 투자자들이 특정 기업에 대한 투자 여부를 결정하는데 가장 중요한 지표들을 제공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ESG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ESG 활동을 잘 하는 기업을 쉽게, 그리고 정확하게 골라내는 방법이 정립되어야 한다.

   

                             [그림 3] “이윤 주가” vs. “ESG Value 주가

 

 

그런데, 재무제표나 재무실적이 매우 표준화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업 가치를 평가할 때는 여전히 정성적인 요소가 많이 고려된다. 예컨대, 두 기업의 이윤이 같더라도 기업 가치는 큰 차이가 나는데, 이윤을 기초로 기업 가치를 산정하는데 EBITDA Multiple, PER 등 다양한 배수와 산정 방식이 동원되며, 이런 방식들은 오랜 기간을 거쳐 자본시장에서 컨센서스로 정착했다. 마찬가지로, 사회적 가치 또는 ESG 성과를 수량화·지표화한 다음에도 이를 기업 가치로 환산하는 과정에서 적절한 지표와 배수 등에 대한 다양한 시도와 논의가 필요하다.

ESG 성과를 객관화된 지표로 만드는 것은 재무성과 지표화에 비해 어렵고 어쩌면 불가능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지표들을 기업 가치와 연계시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ESG 성과를 독려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작업은 필수적이고, 비록 불완전하더라도 개선되고 있다.

 

4.2 ESG 활동성과의 측정 방법

 

기업들의 ESG 활동성과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어떤 정보를,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자세히 공개하라고 할지 기준을 정해야 한다. 재무제표가 표준화된 것에 비하면, ESG 활동성과를 측정하는 표준적인 방법은 아직 마련되지 못했으나, GRI(Global Reporting Initiative)SASB(Sustainability Accounting Standards Board)가 제시하는 보고 표준이 가장 일반적으로 많이 쓰이고 있다.

1997년 설립된 GRI가 기업의 ESG 활동성과를 측정하는 최초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이래, 많은 기업들이 이 가이드라인에 따라 지속가능보고서(sustainability report)를 작성하여 왔다. 2016GRI 가이드라인은 GRI Standards로 명칭을 바꾸었는데, 오늘날 100여개 국가의 10,000여개 기업이 GRI Standards를 활용할 정도로 가장 널리 쓰이는 글로벌 지속가능 보고 표준이다. GRI Standards의 구조는 [그림 4]와 같은데, 먼저 100번대 항목을 보면, 101은 일종의 작성 지침이고, 102, 103은 모든 기업들이 공통적으로 작성하는 항목들이다. 102는 조직에 관한 일반적인 사항과 지배구조(Governance)에 관한 항목들을 포함하고 있다. 103은 중요한 주제(material topic)에 포함되는 항목과 이들을 관리하는 방식 등을 보고하는 항목들이다. 나머지 200, 300, 400 번대 기준은 각각 경제, 환경, 사회 성과에 대한 항목들로서 각각 7, 8, 19개 항목, 34개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항목들은 다시 세부 항목을 포함하고 있다. 개별 기업들은 이 항목들 중 자신에게 해당하는 항목들에 대해 보고하면 된다.

 

                         [그림 4] GRI Standards 구조

 

 

SASB2011년 설립된 비영리기관으로서, 상장기업들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요구 조건에 맞춰, “중요한” ESG 항목들을 공시하는 기준을 제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GRI가 다양한 이해관계자에 초점을 맞추어서 다양한 항목들을 보고하도록 권장하는 데 비해, SASB는 투자자 관점에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 투자자들에게 비교 가능한 중요한 비재무 정보를 제공하고, 투자자들이 산업별로 중요한 ESG 이슈에 대한 기업의 성과를 비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SASB2018년에 77개 산업별로 보고 표준을 발표하였는데, 여기에는 각 산업별로 정보를 공개해야 할 중요 이슈(materiality) 리스트와 측정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림 5]는 통신서비스 산업의 기준을 예시적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통신서비스 산업에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비재무적(사회적) 이슈만을 공개하도록 하고 있어서 GRI에 비해 훨씬 항목 수가 적다. 보다 구체적으로, 기업 경영 과정에 사용한 에너지원, 고객정보 보호, 정보보안, 폐기물 관리, 공정경쟁과 오픈 인터넷, 시스템적 위험 관리, 서비스 중단 복구 대책 등 통신서비스 기업들의 성과에 큰 영향을 미칠 항목들이 공개 항목으로 제시되어있다.

SASBGRI에 비해 훨씬 늦게 지속가능성 보고 표준을 제시했지만, 재무적 성과와의 통합 보고(integrated reporting)에 초점을 맞추어 재무적 성과 관점에서 중요한 ESG 요소를 중심으로 간결한 보고 지침을 만들어서 투자자들에게 빠르게 수용되고 있다. 특히 BlackRock CEOLarry Fink2020년 초 CEO들에게 보내는 연례 서한에서 SASBTCFD(Task Force on Climate-related Financial Disclosures)의 보고 기준을 따른 정보 공개를 요구하면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그림 5] SASB Telecommunication Services Standard

 

 

4.3 ESG 활동성과의 평가

 

개별 기업들의 ESG 성과 보고 체계가 갖추어지면 다음 질문은 이를 어떻게 평가에 활용할 것인가.”가 되겠다. 재무제표가 있다고 바로 기업 재무실적에 대한 평가표가 나오는 것은 아니고, 또한 재무제표가 가장 중요하긴 하지만 유일한 평가 자료는 아니어서, 투자자, 애널리스트, 신용평가 기관들은 재무제표 이외에도 다양한 정보를 활용하여 투자 여부, 적정 주가, 신용등급을 결정한다. 마찬가지로 각 기업들이 공개한 ESG 성과 자료들을 활용하여 각자 자신들의 목적에 맞게 ESG 활동성과를 평가하는데, 개별 기업의 ESG 평가등급이 ESG 투자에서 가장 기본적인 자료로 활용된다.

ESG 평가등급을 매기는 방법에 대해서는 MSCI의 사례를 들어 블로그 (2)에서 소개한 바 있다. MSCI80ESG 리스크 요인 항목, 160ESG 관리 역량 항목에 대해 각 기업이 동종 기업들에 비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정량적인 지수로 측정한 후, 이들을 37개의 ESG 평가 항목(이슈) 별로 묶어서 각 이슈에 대해서 0~10 스케일로 평가 점수를 매긴다. 37개의 ESG 이슈 상세 내역은 [그림 6]에 제시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ESG 평가 항목은 “3 Pillars(E, S, G)-10 Themes-37 Key Issues”의 계위로 구성되어 있다. 37개 이슈 별로 평가 점수가 주어지면, 10개 테마 별로 해당 이슈들의 점수를 가중 평균한다. 10개 테마에 대해 주어진 평가 점수는 다시 각 테마 별 가중치를 감안하여 E, S, G Pillar의 평가 점수를 결정하는데 사용된다. 마지막으로 이 세 점수를 가중평균하면 하나의 숫자로 표시된 해당 기업의 ESG 평가점수가 산출되고, 이 점수를 기반으로 AAA부터 CCC까지 표시한 것이 기업의 ESG 등급이 된다.

 

                         [그림 6] ESG 등급 산정 시 평가 항목

 

 

그래도 재무제표의 경우에는, 매출액/순이익 규모 및 성장률 등 몇 개의 표준화된 지표를 활용하여 기업 가치를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ESG 성과에서는 계량적 지표가 구하기 어려운 분야가 많고, 특히 Social 영역의 경우 산업에 따라서 관심 영역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공통적인 지표를 만들기도 어렵거니와 산업간 비교는 거의 불가능할 수도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ESG 평가 기관의 평가방법(rating criteria)에 대한 개선과 이를 위한 공개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재무활동에 대한 신용평가도 비슷한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의 경우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몇몇 개의 계량지표에 크게 의존하여 신용평가를 할 수 있기 때문에 평가방법이나 결과의 신뢰도에 대한 문제가 크지 않다. 그러나 ESG 평가는 어떤 자료를 활용하였는지, 각 항목은 계량/비계량 지표를 어떤 방식으로 만들었는지, 가중치는 어떻게 두었는지 등에 대해서 컨센서스도 없고 외부에 공개되는 정보도 신용평가의 경우에 비해 덜 투명하다.

 

4.4 기업의 사회적 가치 측정 사례: SK텔레콤

 

그럼 이제 기업들이 어떻게 실제로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고 이를 보고하는지를 SK텔레콤의 사례를 통해 알아보자. SK텔레콤은 2005년부터 지속가능 보고서를 작성, 공개하고 있는데, 초기에는 GRI Index의 흐름에 맞춰 작성하다가, 최근 보고서는 GRI, SASB, TCFD 등 다양한 기준을 종합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2019년 지속가능 보고서[그림 7]과 같이 SK텔레콤의 사회성과 측정 범위를 제시하고 있다. 이 기준은 SK그룹이 공통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하는데, SK 그룹은 사회적 책임 활동의 중요성이 증가하고 있음을 감안하여,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함께 고려하는 더블 바텀라인(Double Bottom LIne, DBL)을 경영 개념으로 도입하여, 사회문제 해결을 통한 사회적 가치 창출을 기업 경영의 한 축으로 반영하고 있다. DBL에는 경제적 가치인 재무성과와 화폐가치로 측정할 수 있는 사회적 가치인 비즈니스 사회성과’, ‘사회공헌 사회성과’, ‘경제 간접 기여성과가 포함되어 있다. [그림 7]에 제시된 항목은 앞에서 살펴 본 [1]의 기업이 창출한 경제적 & 사회적 가치 항목과 유사하다. , [1]국민경제 기여경제 간접 기여성과와 동일하고, ‘사회 공헌은 기업 활동을 통한 공헌인 비즈니스 사회성과, 기업 활동 이외의 사회공헌 사회성과를 포함하는 항목이다. 그리고 소비자 잉여[1]에서 별도의 항목으로 표시되어 있으나 비즈니스 사회성과로 포함시켜도 무방한데, [그림 8]에서 보듯이 SK텔레콤이 비즈니스 사화성과를 산정할 때 소비자 잉여를 포함시키고 있지 않다.

 

                         [그림 7] SK텔레콤의 사회성과 측정 및 보고 범위

   

 

[그림 8]은 지속가능 보고서의 산정 범위에 포함된 재무성과와 비즈니스 사회성과를 화폐가치로 환산한 결과를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 따르면 SK텔레콤은 20199,803억원의 순이익(경제적 가치)를 창출하였다. 환경 관련 성과는 (+)/(-) 성과 모두를 포함하고 있는데, 빌딩(1,000억원), 네트워크(5,549억원), 임직원 사용(26억원) 등의 에너지 관련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였으나, 공장(FEMS) 및 빌딩(BEMS) 에너지관리 시스템 도입을 통해 에너지를 절감한 (+) 요인을 반영하였다. 한편 사회 관련 성과는 T map 사용을 통한 교통사고 감소, 서비스를 통한 범죄 예방, 취약 계층 통신서비스 제공 등의 성과를 냈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SK텔레콤은 사회성과에 소비자 잉여를 반영하지 않았는데,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이를 납득하기 어렵다. T map을 통한 교통사고 감소, 범죄 예방, 취약 계층 서비스는 모두 소비자 잉여의 일부 구성요소에 불과하며, 소비자들이 통신서비스로부터 누리는 효용은 여기 열거된 몇 가지 사례를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다. , 소비자들이 통신서비스에 가입할 때 편리한 T map 서비스, 범죄 예방 효과 등을 이미 효용에 포함시켜서 의사결정하고, 이 효용 수준에 따라 최대 지불 의향액(WTP, willingness to pay)이 결정되기 때문에 (WTP-Price)에 해당하는 소비자 잉여액을 모두 사회성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소비자 잉여는 수요함수를 추정함으로써 계산할 수 있는데, 물론 일정 수준의 경제학 지식과 방법론이 필요하지만 비교적 표준화된 방법을 통해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그림 8] SK텔레콤의 사회·환경 손익 분석 종합결과

 

 

SK텔레콤이 적용하고 있는 GRI Standards에 따르면 사회성과에 소비자 잉여가 명시적으로 배제되거나 포함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리고 실제로 몇몇 다른 기업들의 지속가능 보고서에도 소비자 잉여가 포함된 사례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SK그룹이 예외적으로 소비자 잉여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 하겠다. 그러나 소비자 잉여=사회적 잉여=사회 후생이라는 경제학 상식을 바탕으로 볼 때 사회적 가치에 소비자 잉여를 포함시키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 특히 SK텔레콤 같은 B2C 기업의 경우 이 비중이 매우 크다. 한 연구에 따르면, 2005년 우리나라 이동통신서비스로부터의 소비자 잉여가 2.17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날 정도로 큰 금액이다. 따라서 설사 GRI 기준이 소비자 잉여를 포함시키는 것이 관행적이라 하더라도, 이들과의 협의를 통해서 소비자 잉여를 포함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5. 에필로그 - 기업의 사회적 가치 추구와 ESG 투자의 목적

 

프롤로그에서 밝혔듯이 블로그 (3), (4), (5)ESG 투자를 직접 다룬 것은 아니었고, 이번 글은 경제학 관점에서 ESG 투자를 다루었기에 내용상으로는 블로그 (2)와 더 직접 닿아있다. 그럼 굳이 블로그 (3), (4), (5)를 중간에 끼워 놓은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ESG 투자를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사회적 경제라는 맥락에서 해석해서는 안 된다,” “ESG 활동은 이윤 또는 주주가치를 희생해가면서라도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결론을 끌어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는, 다시 이번 글에서 경제학 관점에서 볼 때 ESG 투자는 투자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ESG 가치 추구를 잘 하도록 기업을 독려하고, 이를 잘하는 기업들에 투자하는 행위라는 점을 설명했다. 어떤 이들은 내가 여러 블로그에서 이 메시지를 너무 반복한다고 불편해할 지도 모르겠다. 최근에 ESG 투자가 화두가 되고 다양한 ESG 투자 상품도 쏟아져 나오면서 웬만한 사람들은 ESG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ESG 투자의 근본적 동인, 의의와 방향성, ESG 투자와 자본주의의 미래 등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컨대 착한 투자” “착한 기업이라는 수식어가 ESG 투자나 ESG 경영 앞에 붙는 것은 대표적으로 ESG를 오도하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흔히 착한이라는 수식어는 자신이 손해를 보면서라도 남을 위해서 행동한다는 뉘앙스를 담고 있다. “너에게도, 나에게도 이익이 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영리하다거나 똑똑하다고는 부를지언정 착하다고 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ESG 투자자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행동한다. 물론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뿐 아니라, 가능하면 남에게도 이익이 되는 행동을 하려고 애를 쓴다. 이 또한 법이나 사회 관념이 이렇게 유도하는 측면도 있겠지만, 자신의 이익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똑똑하고 이기적인투자자라는 수식어가 더 맞다고 생각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표현도 비슷하다. 기업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당연히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하고, 책임의 내용과 강도는 시기적으로 변화해 왔다. 정치적 절차를 걸쳐서 도입한 법·제도를 통해 기업에게 새로운 사회적 책임을 부여하는 것은 개별 기업의 선호와 관계없이 정당화될 수 있다. 그러나 기업이 이윤을 덜 내도 좋으니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우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을 하거나, 더 나아가 법이 아닌 사회적 압력이나 여론을 통해서 이를 강제하는 것은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붕괴시키는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ESG 투자가 ESG 활동을 잘 하는 기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때 비로소 기업의 ESG 성과를 측정하고 기업을 평가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 만약, ESG 활동이 착한 기업의 행동이라면 착한 기업이 알아서 잘 할 테니까, 또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때문이라면 무조건 하라고 하면 될 테니까, 이렇게 열심히 ESG 성과를 정의내리고, 측정·평가를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다음 블로그에서는 다시 최초의 질문으로 돌아가, “ESG 투자는 왜, 누구를 위해서 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중심으로 한 기업의 목적에 대해서 논의하도록 한다

Posted by 조 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