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닷컴 2022년 6월 6일

 

코로나19가 촉발한 글로벌 공급망 붕괴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가속화하고 있다. 코로나19로 물류 시스템이 얼어붙고 러시아에 대한 제재와 전쟁으로 말미암아 생산이 줄어들어, 부품·원료·농산물 가격이 치솟고 그나마 공급도 원활하지 않다. 많은 기업들은 글로벌 분업 체계를 구축해 원자재 조달부터 생산, 유통에 이르는 전 과정, 즉 공급망을 여러 협력업체에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공급망 관리는 진작부터 기업의 핵심 활동으로 여겨져 왔지만, 요즘처럼 그 중요성이 부각된 적도 없는 듯 하다.

동시에 ESG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새로운 관점에서 공급망 관리의 중요성 역시 조명되고 있다. 즉, 자사(自社)뿐만 아니라 자신의 공급망에 참여하는 기업들에서 발생하는 환경 및 사회 문제도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인식이 커진 것이다. 물론 글로벌 기업들이 전 세계에 흩어진 협력업체에서 발생하는 노동·환경 문제까지 제대로 통제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렇지만 실제로 문제가 발생하면 직접적으로 브랜드 가치 저하 등 큰 손실을 입는다. 1996년 나이키 하청 기업이 아동 노동을 통해 축구공을 생산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촉발된 대대적인 불매운동이 대표적인 예다.

 

◇ EU “전체 공급망에 대한 인권보호 의무”

 

국제 기구와 각국 정부는 기업이 협력업체에 대해 사회·환경적 요소를 고려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2015년 영국이 ‘현대판 노예제 방지법(Modern Slavery Act)’을 제정해 대기업의 공급망 관리 책임을 명시한 이후, 대부분의 ESG 평가기관들은 공급망 내 인권 항목을 추가했다.

특히 주목할 것은 지난 2월 EU 집행위원회가 발표한 ‘기업 공급망 실사 지침’(안)이다. 이 지침은 EU 의회와 이사회의 승인을 받은 후 회원국들이 2년간의 준비 절차를 거쳐 2024년부터 시행하게 된다. 이 지침은 기업이 협력업체들의 인권 현황과 환경 오염 등을 자체 조사해 문제가 있을 경우 해결하도록 의무화하는 것을 핵심 내용으로 하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기업들은 ①공급망 실사를 주기적으로 실시하고 ②실질적, 잠재적으로 유해한 인권 및 환경 위험을 확인하고 ③실질적 위험은 제거하거나 최소화하며 ④잠재적 위험은 방지하거나 완화하는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또 ⑤실사 방법의 유효성을 점검하고 ⑥실사 내용을 공개해야 한다. 이 지침은 EU 기업뿐 아니라 EU 지역에 수출하는 기업에게도 적용될 예정이어서, 해당 기업이 EU에 본사를 두지 않더라도 본사와 자회사, 계열사 및 공급망에 있는 모든 기업에 대해 인권 실사를 해야 한다.

많은 ESG 이슈가 그렇듯, 공급망 관리 또한 기업에게는 새로운 위험이고 부담이다. 특히 생산시설을 저임금 개도국으로 이전한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은 공급망 실사까지 챙길 역량이 없다. 게다가 한국에는 공급망 실사와 관련한 지침도 없다. 그럼에도 글로벌 공급망 실사 의무화는 더 이상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 온실가스 배출도 협력사까지 합산 평가

 

작년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6)’는 우여곡절 끝에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이라는 목표에 대해 합의를 도출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이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정확하게 측정할 필요가 있다. 이런 필요성에 따라, 국제회계기준(IFRS) 재단은 ESG 공시 글로벌 표준을 제정하기 위해 작년 11월 ‘국제 지속가능성 기준위원회(ISSB)’를 설립했다. 그리고 ISSB는 지난 3월 31일 ‘기후 관련 공시기준’을 발표했고, 사회 및 거버넌스 관련 기준은 추후 순차적으로 발표할 예정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기업들은 스코프(scope) 1, 2, 3 온실가스 배출량을 모두 공시해야 한다. 스코프 1은 기업이 직접 배출한 온실가스 배출량, 스코프 2는 에너지 사용에 따른 배출량, 스코프 3은 공급망에서의 배출량을 각각 말한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도 지난 3월 기후변화 정보 공시를 의무화하는 규정 초안을 발표했는데, SEC도 스코프 1, 2 온실가스 배출량은 물론 일정한 범위 내에서 스코프 3 배출량까지 공개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즉, 스코프 3의 경우 스코프 3 배출을 포함하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한 기업이나, 스코프 3 배출량 정보가 중요한(material) 기업은 공급망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공시해야 한다.

이처럼 온실가스 배출량을 스코프 3까지 공시하도록 하는 것은 기업들에게 큰 변화다. 현재 한국 배출권 거래제는 스코프 1, 2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공급망 전체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를 측정하려면 비용이 들뿐 아니라 정확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더구나 앞으로 대기업들에게는 스코프 3까지를 온실가스 감축 목표로 포함시키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대기업들은 공급망에 포함된 중소기업들을 압박할 것이고 재무적이나 기술적으로 제대로 준비가 안된 중소기업들은 큰 어려움에 처할 것이다.

이렇게 우리나라 경제와 기업에 큰 영향을 미칠 제도가 빠르게 도입되고 있는데, 본격적으로 대응하는 조치는 잘 안 보이고 문제의 심각성마저도 잘 부각되지 않는 듯하다. 이렇게 태평스런 분위기에서 어떻게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40% 줄일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 조신 교수는

기업과 정책, 학계를 모두 경험한 통섭적 학자다. 서울대학교와 미국 워싱턴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일리노이주립대학교에서 강의했다. 이후 기업 현장에 뛰어들어 SK커뮤니케이션즈와 SK브로드밴드 대표이사를 역임했고, 대통령비서실 미래전략수석으로도 일했다. 저서로는 '넥스트 자본주의, ESG' 등이 있다. ‘ESG 바로읽기’에서는 현재 경제·경영계와 자본시장 전반을 지배하는 핵심 화두로 떠오른 ESG가 실제로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고, 이에 어떻게 준비하고 대응할 수 있는지 독자의 눈높이로 전달한다.

 

 
Posted by 조 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