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닷컴 2022년 5월 14일

 

윤석열 정부는 최근 화두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관련 공약을 다수 발표한 바 있다. 이제 ESG가 본격적으로 성과를 내고 지속가능성을 확보해야 할 시점인데, 새 정부가 여기에 많은 관심을 가지는 건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ESG는 다양한 이슈를 포괄하고 있고 관련 당사자들도 많아 과제들 간 관계를 잘 정리하고 우선순위를 설정하는 것이 쉽지 않다. 또 정부가 할 일과 시장에 맡길 일을 잘 구분하는 것도 중요하다.

새 정부에 바라는 ESG 핵심 정책 몇 가지를 꼽아본다.

 

◇ 자금·정보 원활히 흐를 제도 갖춰야

 

ESG 생태계엔 기업, 금융 기관, 투자자, 정부, 이해관계자 등 다양한 참여자들이 있다. 이들의 이해관계는 항상 일치하지는 않고 참여자들 간의 힘의 불균형도 존재한다. 정부는 이 생태계 조성자로서 역할이 중요하다.

특히 자금과 정보의 원활한 흐름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갖출 필요가 있다. 환경·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많은 자금이 필요하다. 예컨대 맥킨지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매년 3조5000억 달러(약 4450조원)의 추가 지출이 필요하다고 추정했다. 자본 시장에서 이런 막대한 돈이 저절로 공급되길 기대하는 건 무리다.

ESG 투자 활성화는 정확한 정보에서 시작한다. 투자자 입장에서 어떤 기업이 어떤 분야에서 ESG 경영을 잘 하는지 알아야 투자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EU(유럽연합)를 위시한 주요국들은 금융기관과 상장기업들에게 상세한 ESG 정보 공개를 의무화하고 있다. 한국은 2025년부터 2030년까지 순차적으로 상장기업들의 ESG 정보공개를 의무화할 예정으로 세계적 흐름에서 크게 뒤지고 있다. 2030년은 늦어도 너무 늦다. 기업 부담을 감안해 의무화 시점을 늦췄을 수 있으나, 상장기업에게 정보공개 의무는 완화해 줄 성격의 부담이 아니다.

 

 

 

한편 주요국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들은 주주제안, 의결권 행사 등 주주관여(engagement)를 통해 적극적으로 기업들의 ESG 경영을 독려하고 있다. 국민연금도 스튜어드십 코드를 바탕으로 ESG 책임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다만 ‘민간기업에 대한 경영 간섭’이라는 논란에서 자유롭기 위해서는 정부 영향력 아래에 있는 기금운용위원회의 인적 구성과 의사결정 구조 개선이 선행되어야 한다.

 

◇ 시장실패 영역에 집중

 

정부가 구체적으로 어떤 환경·사회 문제를 해결할까 하는 각론에 들어가면 전선(戰線)이 지나치게 넓다는 것을 곧 느끼게 될 것이다. 모든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덤비면 힘만 빠지고 제대로 되는 것도 별로 없기 십상이다. ESG 목표 달성을 위한 기업과 시장, 정부의 역할이 각자 있다.

정부는 특히 시장이 잘 작동하지 않는 영역에 집중하는 것이 옳다. 대표적인 것이 지구 온난화를 비롯한 환경 문제다. 기업들은 온실가스를 배출할 때 비용을 치르지 않았기 때문에 감축 노력을 할 필요가 없었다. 정부는 탄소배출권 거래제나 탄소세 등을 통해 온실가느 비용을 기업 의사결정에 반영하도록 해야한다.

그에 비해 정부가 시장에 직접 개입해 가격을 조정하려고 하면 많은 문제점이 드러난다는 사실은 지난 몇 년간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에서 잘 경험한 바 있다. 물론 시장에서 계약에 의해 결정된다고 해서 모든 결과가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모든 계약은 불완전하고, 당사자간 힘의 불균형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럴 땐 정부가 개입해 이해관계자 보호를 위해 나설 필요도 있다. 소비자보호법, 근로기준법, 환경보호법, 파산법 등이 이런 필요성에 의해 도입된 제도들이다.

사회 전체적으로 경제적 불평등은 점점 심해지고 있다. 최소한의 생존 조건을 확보하지 못한 계층도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정부는 점점 더 많은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 혁신을 통해 지속가능성 확보

 

경영자들은 의사결정을 할 때 항상 트레이드오프 관계를 고민한다. 예컨대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설비투자를 하면 비용이 증가한다. 그러나 ‘온실가스 감축’도 ‘이윤’도 중요하기 때문에 어느 하나를 포기할 수는 없다. 이처럼 기업에서 이윤과 사회적 가치라는 두 가지 목표가 상충될 수 있다. 곡선 모양의 생산가능 곡선에서 A, B 중 어느 지점을 택하느냐에 따라, 이윤을 높이고 사회적 가치 달성을 낮추거나 그 반대의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트레이드오프 관계가 존재하면 ESG 목표 달성도, 지속가능성도 확보하기 어렵다. 여기서 필요한 게 혁신이다. 이윤과 사회적 가치를 모두 높이는 방법은 생산가능 곡선 자체를 끌어올려서 D와 같은 지점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 지점이 과학기술 혁신, 디지털 전환 등과 ESG가 만나는 곳이다. 혁신은 항상 정부의 중요한 어젠다였지만, 이제 그 중요성과 의미, 그리고 방향성이 좀 더 분명해졌다.

ESG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새로운 자본주의 패러다임을 만들어가는 진지한 과정이다. 기업과 시장, 정부가 협력해 이 과정을 성공적으로 만들어 간다면, 한국이 한층 선진화된 시장경제 바탕의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조신 교수는

기업과 정책, 학계를 모두 경험한 통섭적 학자다. 서울대학교와 미국 워싱턴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일리노이주립대학교에서 강의했다. 이후 기업 현장에 뛰어들어 SK커뮤니케이션즈와 SK브로드밴드 대표이사를 역임했고, 대통령비서실 미래전략수석으로도 일했다. 저서로는 '넥스트 자본주의, ESG' 등이 있다. ‘ESG 바로읽기’에서는 현재 경제·경영계와 자본시장 전반을 지배하는 핵심 화두로 떠오른 ESG가 실제로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고, 이에 어떻게 준비하고 대응할 수 있는지 독자의 눈높이로 전달한다.

Posted by 조 신 :